[Original]철거되는 국내 최고의 호텔이 남긴 질문

"우리가 제안하는 식사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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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일, 새해 첫 근무일에 벗밭은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를 함께 보았습니다. 철거가 진행 중인 힐튼서울의 전시를 보며, 제 기억 속에 가장 오래 머문 건 화려했던 전성기의 기록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공간의 흔적들이었어요. 잘 지어진 건물을 설명하는 말들보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이 더 선명히 남았습니다. 좋은 공간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는(혹은 그들은)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걸까요?  우리는 지금, 너무 쉽게 무언가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건축만이 아니라 관계도, 공간도, 식사도, 감각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빠르게 생겨났다가 빠르게 소멸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을 상상하는 일이 오히려 드문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전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래는 그날의 대화를 최대한 덜어내지 않고 정리한 기록입니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지금 벗밭이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고민해야 할 일들을 함께 떠올리며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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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빛과 그림자를 체감한 순간이었어요 / 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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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힐튼 서울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철거되고 있는 모습으로 처음 마주했는데요. 처음엔 “왜 철거를 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4층에 올라가서야 재개발이라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노동자들의 손과 기계에 의해 하나하나 해체되는 힐튼 서울을 보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빛과 그림자가 확 와닿았고 감정이 미묘해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쓰레기 양을 보며 건축에서 비롯되는 환경 파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다시금 상기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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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건축가가 힐튼 서울을 짓는 과정을 보면서는 ‘낭만’과 ‘협업’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어요.건축가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의 협업, 그리고 시대를 넘어 계속해서 남을 건축물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에서 낭만을 느꼈던 것 같거든요. 사전에 ‘낭만’을 검색해 보니,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러한 분위기라고 하더라고요. 비현실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느낌. 제가 일과 삶에서 추구하는 태도이기도 해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나는 충분히 낭만적인가?” 김종성 건축가에게 이 건축은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행위였던 것 같아서, 직업인으로서 많은 걸 배웠어요.


다만 아쉬웠던 점도 있었어요. 실제로 그 공간을 돌보고 흔적을 남겼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런 목소리는 거의 없었거든요. 건축가와 건축 중심의 아카이브에 치중되어 있어서,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남기는가에 있어서—역사적으로—늘 가진 사람들이나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 위주로 담기는 점이 조금 아쉬웠어요. 다른 전시에서 이런 이야기도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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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나이 드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 가영


저는 요즘 우리 공간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나이 드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단순히 낡아지는 공간 말고요. 그런 맥락에서 힐튼 서울을 설계한 건축가의 관점이 깊이 와닿았어요. 이 건축은 몇십 년 뒤 이 건물이 어떻게 나이 들지를 고려하며 설계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철거되는 게 아쉽게 느껴졌어요.


물론 철거와 유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허문다는 건 단지 건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떤 기억과 가치를 지우고 새로운 판단을 덧입히는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잘 설계된 공간을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사실은 많이 아쉬웠어요. 그 시대의 재료, 수입 환경, 도시 스케일, 사회적 맥락이 모두 담긴 건축이었으니까요. ‘이건 정말 그 시점에만 가능했던 아이디어였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지금 우리는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무엇을 실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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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오브 더 하우스(back of the house)’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공간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한 설계였다는 점에서요. 대놓고 드러나진 않지만 꼭 필요한 공간을 어떻게 함께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가 만드는 모든 공간과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질문 같았어요. 건축가와 건축주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프로젝트를 진척시킨 과정도 무척 흥미로웠고, 그 대화의 흔적을 통해 하나의 공간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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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얼마나 오래 쓸까가 아니라, 빨리 바꿀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된 것 같아요 / 기현


저는 제 시선을 최대한 내려놓고 이 전시를 보고 싶었어요. 철거라는 게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이건 나쁘다’라는 전제를 깔고 보게 되잖아요. 이 아카이브의 목적이나 역사적 관점을, 생태적인 시선이나 생태학자의 관점으로만 보면 단순한 미화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느낄 사람도 있겠고요. 이번에 제가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건축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를 체감했거든요.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재건축이 사람들의 환경을 더 낫게 만드는 방향이라면 분명 좋은 점도 있겠지만, 과연 주상복합을 세우는 게 이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어떤 이점을 주는지는 같이 이야기해 봐야 할 문제라고 느꼈고요. 역사학자, 건축학자, 사회학자처럼 각기 다른 분야의 시선으로 보면 이 전시가 다르게 보이겠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다만 앞서 나온 이야기처럼, 기록이 만든 사람들 쪽에만 치중돼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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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18미터 아트리움을 실제로 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어요. 건축가는 그 공간을 시민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민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히 느꼈어요. 그리고 역시 기록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기록이 결국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공간에 대한 상실감이 있을 것 같아요. 제 지인들 중에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진 경험이 꽤 있거든요. 미래 세대만큼은 이런 상실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아파트를 보면 점점 수명을 짧게 짓는 느낌도 들고요. 이건 건축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품 전반의 문제 같기도 해요. 얼마나 오래 쓸까보다 얼마나 빨리 바꿀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된 것 같아서요. 옷도 세탁기 몇 번만 돌리면 금방 너덜너덜해지잖아요.


최근에 할머니 댁에 갔는데, 이사하신 지 10년, 15년이 지났는데도 낡았다는 느낌이 거의 없더라고요. 인테리어도 따로 하지 않으셨고요. 요즘은 짧게 머물다 떠나는 게 기본값이 되다 보니, 공간을 ‘내 것’처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몇 년 뒤에 인테리어 하면 되지—이런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디폴트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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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고 나서 벗밭의 일에도 하나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작은 기억들은 과연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을까? 오늘의 전시는 하나의 건축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일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자서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느린 식사는 다소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재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도시 한복판에서, 벗밭은 식탁의 변화를 제안하며 함께하는 식사를 이야기합니다. 시간에 쫓겨 해치우듯 먹는 식사가 더 흔해진 요즘, 역설적으로 건강한 식사를 위한 시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저희의 마음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안하는 식사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벗밭이 만드는 식탁과 커뮤니티, 공간과 기록들이 오래 남는 감각과 기억을 품고 있는지. 지금의 선택이 몇 년 뒤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그 물음을 놓지 않고 싶어집니다. 


우선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식탁 위에서 계속 이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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