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벗밭에게 가장 중요했던키워드는 ‘협업’, 그리고 ‘함께함’이었습니다."

고성에 왔습니다.
2025년을 갈무리하는 워크숍을 위해 2박 3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를 할 만큼, 이번 시간은 기대도 준비도 충분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주 그렇듯 여러 일정이 겹치며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몸 컨디션마저 최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생각을 꺼내기보다,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내년을 계획하고 싶다는 바람과 꼭 맞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치고는 둥근 바람이 불었고, 때맞춰 내린 눈 덕분에 풍경은 겨울왕국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속초의 한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고, 편지를 썼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은 참 좋았습니다. 애써 좋게 먹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넉넉한 마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워크숍 시간에는 내년에 무엇을 할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교육이란 무엇인지, 커뮤니티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이 두 방식이어야만 했는지부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 우리만의 언어로 답하기 위해 궁리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했고, 저는 그 시간을 오래 바라왔습니다. 끝내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과정에는 ‘어떻게’나 ‘얼마나’가 아니라 ‘왜’를 붙잡는 불투명한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때도 있었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조급하게 다그치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지금은 함께 발맞춰 걷는 법을 더 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걷고, 때로는 뛰는 그 과정이 즐겁고 신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함께했을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그곳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실력도 갖추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커뮤니티’, ‘함께 한다는 것’을 일과 말, 행동, 그리고 조직의 문화 전반에 더욱 일관되게 녹여내는 방법을 찾고 적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고성에 머무는 동안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짧고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폭폭한 오두막에서, 주방에 난 창과 맞닿은 식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숙소에서. 세 분의 이름을 알게 됐고, 우리 셋의 이름을 세 번 소개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이 시간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하자는 기약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웃기고 귀여운 두 명의 동료들과 같이 나눈 이야기, 그렇게 아주 깊어져버린 두 번의 밤이 쌓인 고성에서의 워크숍. 저는 (아마도 우리는) 오랫동안 이 시간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며 그리워할 듯합니다.
가영

올해 벗밭에게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는 ‘협업’, 그리고 ‘함께함’이었습니다.
외부와의 소통만큼이나 우리 안의 소통을 연습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여름에 진행한 강점 워크숍을 거치며, 우리는 각자가 ‘나다운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그 나다움이 서로를 비출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과 ‘믿음’을 계속 마음에 품자고 다짐했습니다.
베이크에서 다른 조직들과 만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왜 커뮤니티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을 안고 넓은 바다를 함께 헤엄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이유 없이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었습니다.
이번 워크숍 장소로 강원도 고성을 제안했습니다. 감자를 좋아해서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2박 3일 동안 하루 한 번은 감자전이나 옹심이를 먹으며 행복했습니다. 우리와 일에 몰입해 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좋았습니다. 남은 일이 우리를 쫓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쉬면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는 사실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의 목적은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의 방향성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우리의 일과 태도가 ‘커뮤니티’라는 방식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벗밭을 ‘지속가능한 식문화 교육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이라고 소개해 왔지만, 그 문장에는 늘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언어로 나아가면 결국 각자의 일을 하다가 서로를 ‘도와주는’ 그림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고민의 실마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의 조건과 존재 이유에 있었습니다. 커뮤니티를 조직의 내부와 외부 모두에 적용하고, 우리가 말하는 가치가 삶과 일 속에 실제로 녹아들게 만드는 것. 즉,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 생각은 저에게 중요했고, 동료들과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워크숍 이후 벗밭을 소개할 문장을 제 나름대로 다시 써 보았습니다.
“벗밭은 식사를 통해 나의 삶과 지구를 건강하게 꾸려가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만듭니다.”
아주 혁신적인 문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문장을 쓰고 말하는 제게는 분명 힘이 생겼습니다. 매년 그랬지만 내년이 정말 기대됩니다.
기현

좋아하는 브랜드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올해 초 벗밭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회사에서 ‘홍보’라는 단어 뒤에 가장 먼저 서 있었어요. 홍보라는 단어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를 발견하고 영감을 받으면 이걸 어떻게 벗밭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제가 벗밭을 좋아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좋음’을 선물하고픈 이 브랜드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하여 올해는 제가 벗밭을 좋아하는 마음과 벗밭이 벗님들을 좋아하는 마음 사이에서 그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애썼습니다. 덕분에 제가 벗밭을 좋아하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고, 그것이 나만의 언어가 되지 않도록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시도한 것도 있었고 실패한 것도 있었습니다. 시도한 만큼 실패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낯부끄럽다거나 실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은 그래도 괜찮은 곳이었으니까요. 돌아보면 회사에게, 동료들에게 고마움이 큽니다. 회사 뒷담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 세상에서 되려 회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만들어가고 싶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조금 느려도 한 발 한 발 함께 맞춰 나아가며—그림이 사진이 되는 순간을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최근 정혜윤 작가님의 신간 ≪책을 덮고 삶을 열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접했어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바위를 다시 올려놓으면 또 굴러 떨어져 영원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 그런데 일본의 야마오 산세이라는 농부 시인이 쓴 〈시시포스〉에 따르면, 형벌을 형벌이 아니게 하는 길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시시포스가 힘에 부치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다 짊어지고 올라갔을 그때의 기쁨이고, 또 하나는 커다란 돌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의 휴식이며, 마지막은 다시 또 한 차례 그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기 위해 천천히 산을 내려갈 때 주변 풍경이 주는 짧지만 깊은 위로입니다. 형벌이란 하나의 단면이자 한 단면의 풍경임을. 형벌은 영원히 계속되고 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히 이어짐을 야마오 산세이는 말합니다.
시시포스의 형벌은 우리네 인생, 노동과도 같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시시포스가 언덕을 오르내리듯 우리도 무언가를 이고 짊어지며 평생을 오르락내리락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 삶도 일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결국엔 헛수고 아닌가 하고 투덜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야마오 산세이의 시를 읽고 나니 시시포스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형벌을 형벌이 아니게 할 수 있다는 말이 계속해서 제 안에 맴돌았어요.
사실 올해 상반기까지, 넓게 보면 9월까지 상당히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가쁜 호흡으로 걷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뒤를 돌아볼 생각을 못했다고 해야 할까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이 조급했을까요. 생각해보면 제 쓸모를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아’, ‘나는 이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 ‘이 자리는 내 자리가 맞아’와 같은 확신을 느끼고 싶었죠. 하지만 이런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 저에겐 되려 스스로 상처를 주는 꼴이 되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끙끙대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꺼내준 건 - 함께 술잔을 기울여준 친구이자 동료들었어요. 기현 가영이 보여준 사진 속 나의 웃는 얼굴이었고.. 또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쪼아대는 새를 멍하니 관찰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책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서툰 화음을 쌓으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 파도에 비친 윤슬이었습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흙으로 돌려보낸 순간이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줍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동시에 선물을 주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존재가 아님을, 그것은 오직 한 단면일 뿐이며 나 자신에게 선물도 주고 사랑도 주고 아껴주고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어요. 그걸 깨닫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가끔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동료이자 직업인이 되고 싶은지 골똘히 고민하곤 합니다. 올해를 갈무리하며 든 생각은- 일잘러나 트렌드를 빠삭하게 아는 마케터, 능력 있는 콘텐츠 창작자와 같은 수식어보다는 당신을 무장해제시키는 온기를 가진 사람, 보다 보면 푸하하 웃음이 나는 사람, 그래서 계속 바라보고 싶어지는 사람, 힘이 나게 만들어 주는 사람, 가공되지 않은 원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시시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한 해를 보냈고, 그로 인해 지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현 가영과 함께한 덕분에 그 모든 일이 좋았다는 말을 진심을 다해 힘 있게 전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달라진 ‘되고 싶은 나’를 향해, 내년에는 그 커다란 바위를 조금 더 힘껏! 조금 더 즐겁게 짊어지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빈
"올해 벗밭에게 가장 중요했던키워드는 ‘협업’, 그리고 ‘함께함’이었습니다."

고성에 왔습니다.
2025년을 갈무리하는 워크숍을 위해 2박 3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를 할 만큼, 이번 시간은 기대도 준비도 충분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주 그렇듯 여러 일정이 겹치며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몸 컨디션마저 최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생각을 꺼내기보다,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내년을 계획하고 싶다는 바람과 꼭 맞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치고는 둥근 바람이 불었고, 때맞춰 내린 눈 덕분에 풍경은 겨울왕국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속초의 한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고, 편지를 썼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은 참 좋았습니다. 애써 좋게 먹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넉넉한 마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워크숍 시간에는 내년에 무엇을 할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교육이란 무엇인지, 커뮤니티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이 두 방식이어야만 했는지부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 우리만의 언어로 답하기 위해 궁리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했고, 저는 그 시간을 오래 바라왔습니다. 끝내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과정에는 ‘어떻게’나 ‘얼마나’가 아니라 ‘왜’를 붙잡는 불투명한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때도 있었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조급하게 다그치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지금은 함께 발맞춰 걷는 법을 더 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걷고, 때로는 뛰는 그 과정이 즐겁고 신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함께했을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그곳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실력도 갖추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커뮤니티’, ‘함께 한다는 것’을 일과 말, 행동, 그리고 조직의 문화 전반에 더욱 일관되게 녹여내는 방법을 찾고 적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고성에 머무는 동안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짧고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폭폭한 오두막에서, 주방에 난 창과 맞닿은 식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숙소에서. 세 분의 이름을 알게 됐고, 우리 셋의 이름을 세 번 소개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이 시간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하자는 기약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웃기고 귀여운 두 명의 동료들과 같이 나눈 이야기, 그렇게 아주 깊어져버린 두 번의 밤이 쌓인 고성에서의 워크숍. 저는 (아마도 우리는) 오랫동안 이 시간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며 그리워할 듯합니다.
가영
올해 벗밭에게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는 ‘협업’, 그리고 ‘함께함’이었습니다.
외부와의 소통만큼이나 우리 안의 소통을 연습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여름에 진행한 강점 워크숍을 거치며, 우리는 각자가 ‘나다운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그 나다움이 서로를 비출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과 ‘믿음’을 계속 마음에 품자고 다짐했습니다.
베이크에서 다른 조직들과 만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왜 커뮤니티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을 안고 넓은 바다를 함께 헤엄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이유 없이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었습니다.
이번 워크숍 장소로 강원도 고성을 제안했습니다. 감자를 좋아해서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2박 3일 동안 하루 한 번은 감자전이나 옹심이를 먹으며 행복했습니다. 우리와 일에 몰입해 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좋았습니다. 남은 일이 우리를 쫓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쉬면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는 사실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의 목적은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의 방향성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우리의 일과 태도가 ‘커뮤니티’라는 방식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벗밭을 ‘지속가능한 식문화 교육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이라고 소개해 왔지만, 그 문장에는 늘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언어로 나아가면 결국 각자의 일을 하다가 서로를 ‘도와주는’ 그림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고민의 실마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의 조건과 존재 이유에 있었습니다. 커뮤니티를 조직의 내부와 외부 모두에 적용하고, 우리가 말하는 가치가 삶과 일 속에 실제로 녹아들게 만드는 것. 즉,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 생각은 저에게 중요했고, 동료들과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워크숍 이후 벗밭을 소개할 문장을 제 나름대로 다시 써 보았습니다.
아주 혁신적인 문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문장을 쓰고 말하는 제게는 분명 힘이 생겼습니다. 매년 그랬지만 내년이 정말 기대됩니다.
기현
좋아하는 브랜드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올해 초 벗밭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회사에서 ‘홍보’라는 단어 뒤에 가장 먼저 서 있었어요. 홍보라는 단어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를 발견하고 영감을 받으면 이걸 어떻게 벗밭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제가 벗밭을 좋아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좋음’을 선물하고픈 이 브랜드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하여 올해는 제가 벗밭을 좋아하는 마음과 벗밭이 벗님들을 좋아하는 마음 사이에서 그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애썼습니다. 덕분에 제가 벗밭을 좋아하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고, 그것이 나만의 언어가 되지 않도록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시도한 것도 있었고 실패한 것도 있었습니다. 시도한 만큼 실패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낯부끄럽다거나 실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은 그래도 괜찮은 곳이었으니까요. 돌아보면 회사에게, 동료들에게 고마움이 큽니다. 회사 뒷담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 세상에서 되려 회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만들어가고 싶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조금 느려도 한 발 한 발 함께 맞춰 나아가며—그림이 사진이 되는 순간을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최근 정혜윤 작가님의 신간 ≪책을 덮고 삶을 열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접했어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바위를 다시 올려놓으면 또 굴러 떨어져 영원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 그런데 일본의 야마오 산세이라는 농부 시인이 쓴 〈시시포스〉에 따르면, 형벌을 형벌이 아니게 하는 길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시시포스가 힘에 부치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다 짊어지고 올라갔을 그때의 기쁨이고, 또 하나는 커다란 돌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의 휴식이며, 마지막은 다시 또 한 차례 그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기 위해 천천히 산을 내려갈 때 주변 풍경이 주는 짧지만 깊은 위로입니다. 형벌이란 하나의 단면이자 한 단면의 풍경임을. 형벌은 영원히 계속되고 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히 이어짐을 야마오 산세이는 말합니다.
시시포스의 형벌은 우리네 인생, 노동과도 같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시시포스가 언덕을 오르내리듯 우리도 무언가를 이고 짊어지며 평생을 오르락내리락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 삶도 일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결국엔 헛수고 아닌가 하고 투덜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야마오 산세이의 시를 읽고 나니 시시포스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형벌을 형벌이 아니게 할 수 있다는 말이 계속해서 제 안에 맴돌았어요.
사실 올해 상반기까지, 넓게 보면 9월까지 상당히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가쁜 호흡으로 걷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뒤를 돌아볼 생각을 못했다고 해야 할까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이 조급했을까요. 생각해보면 제 쓸모를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아’, ‘나는 이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 ‘이 자리는 내 자리가 맞아’와 같은 확신을 느끼고 싶었죠. 하지만 이런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 저에겐 되려 스스로 상처를 주는 꼴이 되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끙끙대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꺼내준 건 - 함께 술잔을 기울여준 친구이자 동료들었어요. 기현 가영이 보여준 사진 속 나의 웃는 얼굴이었고.. 또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쪼아대는 새를 멍하니 관찰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책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서툰 화음을 쌓으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 파도에 비친 윤슬이었습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흙으로 돌려보낸 순간이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줍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였습니다.돌아보면 저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동시에 선물을 주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존재가 아님을, 그것은 오직 한 단면일 뿐이며 나 자신에게 선물도 주고 사랑도 주고 아껴주고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어요. 그걸 깨닫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가끔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동료이자 직업인이 되고 싶은지 골똘히 고민하곤 합니다. 올해를 갈무리하며 든 생각은- 일잘러나 트렌드를 빠삭하게 아는 마케터, 능력 있는 콘텐츠 창작자와 같은 수식어보다는 당신을 무장해제시키는 온기를 가진 사람, 보다 보면 푸하하 웃음이 나는 사람, 그래서 계속 바라보고 싶어지는 사람, 힘이 나게 만들어 주는 사람, 가공되지 않은 원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시시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한 해를 보냈고, 그로 인해 지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현 가영과 함께한 덕분에 그 모든 일이 좋았다는 말을 진심을 다해 힘 있게 전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달라진 ‘되고 싶은 나’를 향해, 내년에는 그 커다란 바위를 조금 더 힘껏! 조금 더 즐겁게 짊어지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