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어쩌다 베트남] 0화. 눈떠보니 베트남

2026년 1월 12일부터 19일까지, 벗밭은 베트남의 다낭과 호이안 지역으로 생태미식여행을 다녀왔어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커뮤니티인 < Vcil Community > 의 친구들을 만났어요. 휴가지만 일이기도 하고, 배움이기도 한 이 여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고, 그 기록을 다시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저희가 느낀 환대와 사랑, 배움의 즐거움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매일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저희의 여정을 전합니다.

부디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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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베트남] 0화. 눈떠보니 베트남

1. 1월에 떠난다고?!

1월의 벗밭은 보통 숨을 고르는 시기입니다. 12월까지 달린 뒤, 다음 해를 정리하고 다시 리듬을 만들기 위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기에 멀리 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 1월은 조금 달랐습니다. 환대의식탁 일정을 부안에서 마친 뒤 하루 쉬고, 다시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다낭이었습니다.

작년 도쿠시마 식생활교육포럼을 포함한 현장탐방 여행에서 저희는 베트남의 대안 네트워크 Vcil 코어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푸드비전글로벌네트워크 대표 Loto (로또/김현숙/맛철학가)가 이들과 함께 생태미식여행을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하지만 함께 가기로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바로 베트남에 일주일이나 머무르는 것이 과연 맞는 선택일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녀온 뒤 다시 일의 리듬으로 돌아오는 일, 몸의 컨디션, 그 다음 몇 주의 흐름까지 함께 흔들릴 것 같았기에, "일주일 가동하고 와서 바로 이전과 같은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가영은 한때 정말로 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히기도 했습니다.


2. 여행의 이유

그 사이 기현이 말했습니다. “일단 난 갈거야!” 한 사람이 먼저 결정한 상태에서, 가영은 "우리"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 이 여행을 함께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 경험이 단순히 좋은 여행이라면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이 벗밭으로 흘러들어오려면, 누군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는 이 경험을 우리의 언어로 만들기 어렵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작년 벗밭에서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가 ‘함께’였다는 사실도 이 선택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렇게 '함께'하는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이 여행에 함께 하게 되었나요?

기현 | 하나는 이 생태미식여행학교라는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 우리도 만들고 싶은 형태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많이 배울 수 있겠다 생각했어. 두 번째는 Vcil 커뮤니티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 작년에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이 친구들이 너무 궁금해졌어. 벗밭이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가치나 방향성이…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실 전 세계적인 연결 안에서 일어나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니까. 다른 나라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리랑 비슷한 가치와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니, 무언가 공명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더 깊이 만나보고 싶었어. 만남을 통해 우리는 어떤 힘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감도 있었고.


가영 | 결정적으로 내가 베트남에 와야 되겠다고 결정했던 이유는, 이 경험이 벗밭으로 흘러들려면 어느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되는데, 전해 듣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경험으로 소화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있었어. 특히나 작년에 내 성장 포인트가 ‘함께’였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경험도 함께 할 수 있을까. 언니는 가기로 결정을 했고, 그러면 나도 가야 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거야.

Vcil Community 는? (홈페이지)

Vcil(Vietnamese Community of Independent Learners) Community는 2014년에 시작된 대안 공동체로 대안 교육과 사회 혁신을 통해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구하며, 사회가 더욱 번영하고 재생 가능(Regenerative)해지도록 이끄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입니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영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1. 대안 교육 / 2. 사회혁신 / 3. 커뮤니티 구축과 네트워킹


3. 다낭과의 첫만남

둘다 베트남은 처음이었어요. 다낭에 도착한 것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 세 시 무렵이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차갑지 않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한국의 겨울처럼 몸이 움츠러들지 않는 공기였습니다. 시원하지만 차갑지 않고, 약간 습한 바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몸이 먼저 안도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항 밖에서 새벽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Vcil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펜팔 친구를 실물로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긴장보단 설렘, 고마움이 먼저 올라왔고 이렇게 만나다니 신기했습니다. 저희는 Vcil 친구들이 공동 숙소이자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Living Lab(이하 리빙랩) 에 머물렀어요.

리빙랩에 도착한 뒤 각성된 상태로 근처 야시장을 가려고 나서려다, 이곳은 아침에 시장이 가장 활발하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포기했습니다. 방 안에서는 모기 두 마리를 발견했고, 그제야 이곳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여름을 기대하며 들뜬 마음을 차분히 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4. 첫 날 아침

첫날 거의 4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아직 시차 적응을 못했는지 7시(한국 시간 9시)에 눈이 떠졌어요. 마치 시간을 두 시간쯤 번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외출 준비를 하고, Linh(링)이라는 친구와 바닷가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날이 가영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링은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찾아주었습니다. 평소에 커피를 잘 즐기지 않는 가영도, 베트남에 와서 시그니처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아 코코넛 커피를 선택했고,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베트남식 커피도 마시고, 생일 케잌으로 바나나 파운드 케잌과 치즈케잌을 나누어먹으니 우리가 베트남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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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낭 동네생활 1일차  / 먹자!

Linh과 카페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나누고,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이 지역의 대표 음식인 미꽝(mì Quảng)을 먹으려 했으나, 식당이 문을 닫아 바로 옆 가게로 향했어요. 테이블 두 개뿐이고 메뉴판도 없는 정말 동네 가게였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어묵 쌀국수인 분짜가(Bún chả cá)! 달달한 맛의 국물에 허브와 고추를 더하니 맛이 풍성하면서 균형이 딱 맞았어요. 3년 전 기현에게 이 음식을 건넸다면 즐기지 못했을 텐데, 그 사이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데에 미각과 마음이 모두 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의 여정을 더욱 기대하게 된 순간 중 하나였죠. 

소화시키자는 핑계로 숙소로 돌아가기 전 시장에 들렀어요. 과일로 가득 차 있었고, 젊은 사람들이 물건을 파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가영의 말에 따르면 "한 가게에 즉흥과일클럽 1년치 과일이 한꺼번에 펼쳐진 느낌"이었습니다. (저희에겐 천국이죠.) 계절이 없는 풍요로움과, 계절이 주는 기다림 사이의 차이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열대 기후라 4계절이 뚜렷한 한국과는 달리 1년 내내 열대 작물을 맛볼 수 있는 대신, 위아래로 긴 지형으로 인해 위도에 따라 같은 달이어도 서로 다른 제철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지리적 특성에 따라 주로 재배하는 작물이 달라지기도 하죠. 과일은 주로 메콩강 주변에서 많이 난다는데, 다음에 꼭 가봐야지 다짐하며 장바구니에 망고스틴, 석가 등 새로운 과일을 조금씩 담아왔습니다.하나씩도 무게를 달아 계산할 수 있어 골라담는 재미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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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베트남, 어디까지 알고 있니?

오후에는 Vcil 코어팀 멤버 Vu가 알려주는 베트남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 나라에 대해 이렇게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동시에 우리는 과연 한국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커뮤니티의 비전과 소개를 들으며 이 친구들이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분명히 이 땅의 맥락을 알고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죠.

베트남은 지금 한국의 80년대처럼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025년에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인구도 2~30대가 인구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나라입니다. 하지만 10년 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 예정이고, 해외 기업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 규제가 적어 환경 오염이 심한 문제 등 우리가 마주한, 혹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함꼐 겪고 있습니다. Vcil은 그런 맥락 안에서 복합위기(polycrisis)를 복합적인 해결책으로 계속해서 연결을 만들고 대안적인 선택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기후위기, 전쟁, 갈등, 외로움, 등. 각자가 마주하는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열쇠를 쥔다고 해서 풀리는 건 아니에요. 큐브처럼, 어느 한 면이 바뀌면 다른 한 면이 또 바뀌죠. 벗밭도 식사를 매개로 삶을 조금씩 바꿔보자 제안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작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는 Vcil을 설립한 Thien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어요. 앞으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번 여정에선 시간과 대화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흐르고, 어느 자리에서든 생각과 고민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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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음으로 연결되는 감각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을 되돌아봤어요.

가영 | 해변가 걸으면서 이야기한 것도 좋았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 어땠어?


기현 | <Learning City>라는 프로젝트가 특히 인상적이었어. 도시를 커뮤니티 공간으로 넓혀서, 어디에서나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경험, 지식, 자원을 나누고 교환하는 프로젝트인데, 우리가 지향하는 커뮤니티나 문화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 커뮤니티 안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각자의 경험을 또 공통의 경험으로 확산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소개하는 친구들이 모두 눈이 빛나더라. 재밌어하는 게 느껴졌어.


가영 | 보통 목표를 “사람 얼마나 모았나, 얼마나 벌었나”고 계산하면 간단하잖아. 근데 우리는 가치를 만들고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만드는 과정을 수없이 거치는데, 품이 많이 들고 진득한 과정이야. 근데 그런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동료” 내지는 “친구다” 이런 의식이 생긴 것 같아. 우리가 가고 싶은 세상으로 가는 과정에 우리가 그 길에 함께 있다는 동질감.


가영 | 나 사실 소셜링을 그렇게 좋아하는 인간은 아닌 것 같아. 외국인을 만난다는 부담도 있었고, 영어로 소통 안 한 지 오래라 자신이 없었어. 근데 오늘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서 언어가 장벽으로 느껴지지 않았어. 신선하고 편안했어.


기현 | 외국어든 한국어든 마음이 담길 때와 아닐 때가 큰 것 같아.

가영 | 너무 동감해.


기현 |오늘은 내가 영어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어. 그냥 마음을 나누는 느낌. 정확히 영어로 얼마나 정확히 표현됐는지는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느낌.

가영 | 그리고 우리의 언어가 그 사람에게 닿는다고 느껴. 고작 몇 단어만으로도 눈빛으로 “너가 하고 싶은 말 알 것 같아” 보내올 때가 있잖아. “우리가 같이 있구나” 그게 좋더라고.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느낌.

기현 | 편안했어. 질문 짜내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질문이 올라오더라. 더 궁금했는데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고 앞으로의 여정이 더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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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VCIL이라는 커뮤니티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아는 것을 말로만 정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배운 것을 바로 삶에 적용하고 실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말과 실행이 일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돈의 흐름과 운영의 방식도 투명하게 공유하며, 커뮤니티의 핵심 가치를 포용성과 관대함이라고 말하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벗밭에서 오래 고민해 온 질문들과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가장 오래 이야기한 주제는 결국 '공동'과 ‘신뢰’였습니다. 집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소유하고 그걸 나누면 얼마나 삶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신뢰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커뮤니티 안에 느껴지는 깊은 신뢰를 어떻게 형성했냐는 물음에 Thien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먼저 믿고, 내가 먼저 내어줘야 해요." 그 말이 저를 관통했습니다. 어떤 방법론적인 대답을 상상했는데, 너무나 단순하지만 깊은 본질을 건드리는 대답이었습니다. 이곳에선 신뢰가 시작점이었습니다.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가능성을 먼저 신뢰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계속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떻게 10년 넘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다른 길은 없다.(There's no other way)"고 답했어요. 그래 그거야! 하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벗밭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건 어때?"라고 묻는다면 저도 같은 질문을 답할 겁니다. 다른 길은 없다는 말은 '우리가 옳으니 우리를 따라와' 라는 이끄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살피고, 걸어가야 하는 길은 여기"라고 겸손하게 들렸습니다. 기쁘게 이 먼 길을 함께 걷는 순례자처럼요. 무엇보다 그 길을 걷는 친구들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낭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질문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눈 떠보니 베트남이었지만, 사실은 우리가 어떤 삶과 어떤 공동체를 꿈꾸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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