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background]어쩌다보니 신나게 놀고 온 것 같은, 냉이마트 사전답사기

안녕하세요, 이야기수집광 수빈입니다. 

요즘 제가 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잘할 거 아니야, 놀다 올거야!” 

저는 무엇이든 잘 해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고, 인정받는 것이 나의 쓸모를 증명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에게 너그럽기보다는 채찍질하는 것이 당연했는데요. 올해는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고 호흡이 가빠질 때는, 제가 좋아하는 밴드의 구호를 빌려 외치기로 했습니다. “잘할 거 아닙니다, 놀다 옵시다!” 직접 입 밖으로 소리를 내뱉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좀 괜찮아지더군요.


오늘은 책을 읽다 이 문장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최고의 창조는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

원래의 저라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잘 정돈된 아카이브만 올렸을 텐데요. 요즘은 힘을 좀 빼려고 합니다. 잘하려고 하니까 자꾸만 일도 기록도, 미루게 되더라고요. 조금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내 마음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일을 오래오래,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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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4일에 열릴 ‘냉이마트’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고양 찬우물농장에 사전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샐러드연맹의 웅이 먼저 세심하게 일정을 제안해준 덕분에 기분 좋은 발걸음을 뗄 수 있었지요. (웅, 고마워!) 


저희 집에서 농장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공항철도에서 서해선으로, 다시 3호선으로 환승해 화정역에 내린 뒤 13분을 걸어야 도착하는 길. 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데, 저 멀리 파란 하늘이 보이더군요. ‘아,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 되겠구나’ 직감했습니다. 


농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꽤 큰 공원이 있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텀블러에 담아온 따뜻한 물을 마시며 숨을 골랐습니다. 혹시 14일에 오시는 벗님들도 시간이 된다면, 화정역에서 농장까지 천천히 걸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공원을 가로지르며 곳곳에 있는 계절의 흔적을 발견해보고, 고양시의 귀여운 빗물받이도 사진에 담아보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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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 도착하니 웅과 찬우물 농부님이 이미 밭을 살피고 계셨습니다. 밭을 바라보는 농부님의 안색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습니다. 올해는 냉이가 많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작년은 농부에게도, 벗밭에게도 참 쉽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여름-가을 동안 비가 너무 많이 왔고, 햇빛 쨍쨍한 날도 적어서 작물이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었죠. 냉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보았던 것과는 크기도, 양도 확연히 달랐습니다.


벗밭에서 모임을 진행하며 늘 마주하는 고민이 바로 이 지점인데요. 날씨와 기후에 따라 작물의 상태는 매일 달라지는데, 우리는 늘 마트에서 보던 일정한 퀄리티와 양을 기대하곤 하니까요. 저 또한 그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고민은 깊어집니다. 농장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은 이제 농부의 발걸음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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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작고 귀여운 냉이)


한편으로 저는 이 지면을 빌려 벗님들과 이런 질문을 나눠보고도 싶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나물을 캐게 되었을까? 나물 문화는 알려지고 기억되어야 할 자원인데, 왜 캐는 건 불법일까? 자연과 닿는 행위는 언제부터 규칙 위반이 된 걸까? 한때는 들과 산에 나던 나물을 캐가도 아무런 제재가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식물을 채집하는 것이 불법이 되고, 땅에 재산권이 생기며 우리는 아무 데서나 나물을 함부로 캘 수 없게 되었지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물의 이름도 맛도 잊어가고 있습니다. 나물을 캐는 행위와는 멀어진 채 마트에서 나물을 접하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지요. 부모님 세대는 어릴 적 들판에서 당연하게 냉이를 캐서 드셨다는데, 저는 이제 돈을 지불해야만 냉이를 맛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관심 있는 소수만이 노지의 향을 머금은 나물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나물들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게 되어 밭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고요. 하우스에서 길러진 매끈하고 초록빛인 나물만이 진짜가 되고, 척박한 노지에서 추위를 견디느라 보랏빛으로 물든 냉이는 되레 가짜처럼 여겨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별것 아닌 일을 문제처럼 부풀려 세상을 너무 흑백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경계하게 되기도 해요.


af3709b65caa1.jpgd35d72c3c826e.jpg광대나물과 별꽃, 꽃다지를 조금 뜯었습니다. 직접 먹어보려고요! 


고민 끝에 이번 냉이마트에서는 냉이뿐만 아니라 밭에 핀 다른 봄나물들도 함께 품어보기로 했습니다. 뿌리 긴 냉이를 찾기 어려워 ‘냉이 대회’는 아쉽게 취소하지만, 대신 광대나물, (쇠)별꽃, 큰개불알풀, 꽃다지처럼 밭이 내어준 다른 선물을 알아가고 맛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더불어 이번 냉이마트에서는 밭, 계절, 식물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 키워드에 관련해 인상깊은 순간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내가 발견한 밭의 순간, 내가 발견한 계절의 순간, 내가 발견한 식물을 적어보는 것이지요. 기록하고, 맛보고, 손을 움직여 계절을 감각하는 이 시간이 모쪼록 오시는 분들께 풍성한 경험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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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웅이 쓴 글도 읽어보세요!

"모두의 봄나물 - 왜 우리는 자연과 닿는 감각을 제도에서도 잃었을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salad_yeonmaeng&logNo=224187595052&proxyReferer=&noTrackingCod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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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봉오리


밭을 둘러보던 중 웅이 매화 꽃봉오리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귀여워, 다음 주에 올 땐 좀 피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 꽃 핀 걸 벗님들에게 보여드릴까? 냉이꽃이랑 큰개불알풀 꽃도 예쁘니까 같이 보여드리자!”


우리는 농장을 둘러보며 벗님들이 계절을 감각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지나칠 법한 것들 사이에서 앞으로 올 봄을 발견하고 제안하는 일은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걸 샐러드연맹 웅과 함께, 찬우물 농부님이 내어준 밭에서 경험할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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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쓰리샷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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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로부터 땅을 보호하기 위해 마른 잎, 볏짚, 나무껍질 등 유기물로 흙 표면을 덮은 농장의 풍경


작년에는 정신이 없어 사전답사도 못했는데, 올해는 답사도 하고 농부님과 맛있는 쌀국수도 먹었습니다. 농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농부님이 제 사주도 봐주셨답니다. 제가 벗밭 멤버들 중 가장 '성격이 세다'고 하시더라구요. 고집도 있고, 자기만의 옳고 그름이 분명한 나머지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쉽다고요. 농부님이 나중에 사주카페를 차려주신다면 제가 단골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짧고 굵은 산책을 마쳤습니다.


농부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웅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답사를 오길 너무 잘했다고요. 사실 냉이마트는 올해로 세 번째라서 굳이 사전답사를 하지 않아도 스무스하게 모임을 진행했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굳이 답사를 간 이유는, 또 오늘 답사가 저에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더 잘 환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진심으로 일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이 평온해야 한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요. 오늘 사전답사를 하면서 밭을 둘러본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웅과 찬우물 농부님을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더 끈끈한 사이가 된 것이 진정한 소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 주에 더욱 편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벗님들을 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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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웅에게는 이번 모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웅에게 물었더니, “힘을 빼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도 깊이 공감했어요. 우리가 먼저 힘을 빼고 즐거워야 오시는 분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계절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봄이 다가오고 있는 찬우물 농장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소리를 들으며 감각을 되찾게 될까요? 14일, 농장에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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