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background]나의 첫 장 담그기

벗님들은 요리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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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저는 조금 부끄럽지만, 요리를 ‘애써서’ 좋아하는 편입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제 추구미인 것이지요.


작년에 강점 검사를 받았는데, 그중 제게는 ‘최상화’라는 강점이 있다고 해요. 잘하는 것을 계속해서 더 잘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그렇게 만드는 데 능숙한 강점이지요. 31개의 강점 중에서도 5위 안에 들 만큼 저에게 강력한 이 ‘최상화’는, 잘하는 것은 끝까지 잘하고 싶어 하는 반면 못하는 것은 아예 놓아버리게 만들곤 합니다.

학창 시절, 영어는 늘 100점이었지만 수학은 25점이었던 적이 있어요. 이상하게 잘하는 영어는 자꾸만 더 공부하고 싶고 재미있는데, 못하는 수학은 아예 놔버리고 싶고 늘 흥미가 생기지 않았거든요. 그땐 내가 왜 그럴까 참 의아했는데, 이 강점을 알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못하는 것도 어찌저찌 해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지요. 저에겐 요리가 바로 그랬습니다. 지난 2월부터 어쩌다 보니 제철 채소를 선정하고, 레시피를 개발하고, 직접 요리도 하고 촬영까지 하고 있는데요. 잘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목도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곁에 있는 동료들이 주는 끝없는 지지와 응원 덕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무교이지만 멤버들이 자주 하는 말을 빌려 써보았습니다.) ‘요리를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빌기보다는,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렇게 마음먹으니 조금씩 요리가 좋아지고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정관 스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반해 도서를 냉큼 사기도 하고, 벗밭 복지 활동인 묵나물 수업이나 ‘조리의 기본’ 같은 배움에도 즐겁게 참여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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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처음으로 장을 담갔습니다. 정확히는 ‘함께’ 담갔다고 해야겠지요. 발효와 장 문화, 사찰 음식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니 기현이 동행을 제안해 주었거든요. 남태령 고개에서 내려 숲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송하텃밭정원연구소(@songha_garden._.lab)’에 방문했습니다. 사당역에서 조금만 떨어졌을 뿐인데 한적한 정취가 느껴져 참 좋았어요. 도착하자마자 직접 담근 간장으로 만든 차를 내어주셨는데, 향긋하면서도 감칠맛이 무척 풍부했어요. 당연히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우린 육수인 줄 알았는데 오직 간장만 넣으셨다는 말씀에, 장만 잘 담가도 이렇게 간단하고 맛있는 육수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 담그기는 생각보다 명쾌하고 단순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단순함 속에 수많은 변곡점이 숨어 있어 집집마다 맛이 달라지는 오묘함이 있지만, 기본은 참 정직하더라고요. 재료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잘 띄운 메주와 좋은 소금, 그리고 깨끗한 물.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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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고로쇠 물이나 옻나무 근처에서 난 물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정수한 물이나 잘 관리된 수돗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어요.

- 소금: 간수가 쏙 빠진 소금이 핵심이에요. 손으로 꽉 쥐었다 놓았을 때 손바닥에 남는 것 없이 보슬보슬 떨어져야 좋은 소금이라는데, 그 촉감을 느끼며 '좋은 재료'가 주는 에너지를 배웠습니다.

- 미생물: 시골집 처마 밑에 왜 메주를 달아놓는지 아시나요? 볏짚에 있는 좋은 균들이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발효를 도와주길 기다리는 거래요. 자연의 힘에 온전히 맡기는 과정인 셈이죠.


항아리에 소금물을 부은 뒤, 메주를 차곡차곡 넣고 정화 작용을 돕는 숯도 띄웠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나 소금물에 메주 맛이 충분히 우러나면 ‘장 가르기’를 한다고 해요. 그때 물은 간장이 되고, 남은 메주 덩어리는 된장이 되어 우리 식탁의 뿌리가 되어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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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장 담그는 날짜에도 다 의미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1년의 시작인 정월대보름이 지나고 맞는 첫 번째 ‘말날(午日)’에 장을 담그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라고 합니다. 저도 오늘 그 기운을 이어받아 정성스레 장을 안치고,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새끼줄을 감아주었습니다. 이때 새끼줄은 꼭 왼방향으로 꼬아야 한대요. 외부의 나쁜 균으로부터 장맛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의식이지요. 효율을 따지자면 번거로운 일일지 모르지만, 못하는 일도 기꺼이 ‘애써서’ 해나가는 저에게 이 느리고 다정한 과정은 묘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두 달 뒤에 장을 가르고, 일 년 뒤에 담근 장을 가져갑니다. 울퉁불퉁한 제 서툰 손길이 시간이라는 마법을 만나 어떤 맛으로 익어갈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이 단순하고도 깊은 세계를 찬찬히 배워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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