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talk]우리는 밀을 선택할 수 있을까

빵과 면, 밀은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이 밀가루 음식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그 밀이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떠올려 본 적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밀’이라는 말이 따로 존재해야 할 만큼, 한국에서 재배된 밀은 이제 낯선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밀은 재배되고 있는데요. 비록 자급률은 1%에 머물러 있지만,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밀의 자급률은 15%로 꽤 높았습니다.


지난 1월, 환대의 식탁 프로그램을 통해 부안우리밀영농조합법인을 방문했습니다. ‘우리밀은 무엇인가’라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부터, 밀 한 알이 역사·정책·기후·산업을 거쳐 지금의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밀의 단백질 구조와 제분과 도정의 차이, 겨울을 지나야 자라는 작물의 생태, 그리고 왜 이 땅에서 밀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지까지. 기나긴 여정을 들으며 밀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 우리의 밥상과 미래를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유재흠 이사님께서 들려주신 우리밀에 관한 이야기를 아래에서 나누어봅니다. 우리가 먹는 빵과 면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밀이 어떻게 제분되는지. 그리고 ‘우리밀’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같이 알아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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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쌀은 밥으로 먹고, 밀은 빵으로 먹을까

곡물은 겉으로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단백질의 성질이에요. 우리가 곡물에서 얻는 영양소는 크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세 가지인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곡물 농사는 거의 전분, 그러니까 탄수화물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어요. 그렇다고 곡물에 전분만 들어 있는 건 아니에요. 단백질도 있고, 지방도 함께 들어 있어요. 이 단백질의 차이가 곡물의 쓰임을 완전히 갈라놓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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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퀴노아가 있어요. 퀴노아는 고대 밀의 종자라고 보면 되는데, 단백질이 특히 많아요. 100g에 16.5g 이상 들어 있어요. 밀도 마찬가지로 귀리나 쌀, 보리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곡물이에요. 이게 밀이 빵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요. 밀 속 단백질에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라는 두 가지 성분이 들어 있어요. 여기에 물을 넣고 반죽을 하면, 이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성질이 바뀌어요. 그때 만들어지는 게 글루텐이에요. 글루텐은 어떤 특정 성분의 이름이 아니라, 단백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구조를 말해요. 이 구조 덕분에 반죽이 늘어나고, 모양을 잡아도 무너지지 않고, 발효할 때 생기는 기체를 붙잡을 수 있어요. 그래서 빵이 부풀 수 있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글루텐은 반죽의 뼈대, 골조 같은 역할인 거죠.


밀과 쌀, 보리의 가장 큰 차이는 먹는 방식에서도 드러나요. 밀은 알곡으로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가루로 만들어서 먹잖아요. 반면 쌀이나 보리는 알곡 그대로 밥을 지어 먹죠. 이 차이 때문에 가공 방식도 완전히 달라져요. 쌀과 보리는 껍질을 벗기는 도정이 중요하고, 밀은 알곡을 곱게 가는 제분이 핵심이에요. 그래서 곡물마다 필요한 시설이나 기술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재배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어요. 무나 배추, 유채처럼 겨울을 거쳐야 꽃을 피우는 작물들이 있잖아요. 밀도 같은 부류예요. 겨울을 지나야 종자를 남길 수 있는 작물이에요. 여름에 자라는 일부 풀을 제외하면, 우리가 먹는 많은 작물들은 사실 겨울을 지나면서 자라죠. 또 밀은 건조하고 서늘한 환경을 좋아해요. 원산지가 사막이나 초원 지대에 가까워서 습기에 약해요. 물이 많으면 병이 들거나 쉽게 죽죠. 그래서 쌀처럼 물을 가둔 논에서는 재배할 수 없어요. 쌀이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한다면, 밀은 그와 정반대 조건을 필요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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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나라의 밀 재배 환경은 어떨까요? 사실 쉽지 않아요. 한국의 농경지는 전통적으로 쌀과 보리에 맞춰 형성돼 왔고, 습도가 높고 비도 많이 오는 편이에요. 특히 남한 지역은 밀을 키우기에 불리한 조건이 많아요. 분단이 없었다면, 기후와 토양 조건상 북한의 황해도나 평안도 지역이 밀 재배에 더 적합했을 거예요. 


이렇게 보면 밀은 영양 성분부터 가공 방식, 재배 환경까지 다른 곡물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매일 먹는 빵과 면은, 단순한 가공식품이 아니라 이런 생태적이고 구조적인 조건 위에서 가능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조선시대 밀 자급률은 100%였다?

그러면 우리는 1년에 밀을 얼마나 먹을까요? 통계를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54kg 정도이고, 밀 소비량은 약 30kg이에요. 예전과 비교하면 최근 10년 사이에 밀 소비는 늘고, 쌀 소비는 줄어들었어요. 고기 소비도 함께 늘었고요. 식생활 자체가 많이 바뀐 거죠. 그런데 이렇게 밀을 많이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접 키워서 자급하는 밀은 여전히 1% 정도에 불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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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 원래부터 이렇게 낯선 곡물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드라마 〈대장금〉 9화를 보면 밀에 대한 흥미로운 장면이 나와요. 궁중 요리 경연의 주제가 ‘진(眞)가루’를 이용한 음식이었는데요. 이 진가루가 바로 밀가루예요. 귀한 이름을 붙였다는 건, 밀가루가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다는 뜻이에요. 극 중에서 장금은 진가루를 잃어버려서 대신 배추잎으로 만두를 만들어요. 원래라면 재료 관리 실패로 바로 탈락했어야 할 상황이에요. 그런데 대왕대비가 등장해서 배추로 싼 만두를 오히려 칭찬해요. 나중에 밝혀지는 이야기로는, 한 궁녀의 어머니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서 마지막으로 대접하려고 장금이의 진가루를 훔쳤다는 설정이 나오죠.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조선시대에도 밀을 먹었다는 사실이에요. 그것도 왕만이 아니라 백성들도 먹었어요. 조선시대에 왕이 다스려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종묘와 사직이 이야기되는데요. 종묘는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고, 사직은 농사와 먹거리와 관련된 제사 공간이에요. 한 해 농사로 거둔 곡물에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죠. 이 사직에 포함된 곡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밀이었어요. 그만큼 밀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작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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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선시대의 밀 자급률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놀랍게도 100%였어요. 당시에는 곡물을 수입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으니까요. 증기기관이 발달하기 전에는 곡물을 배에 실어 나르다 비라도 맞으면 쉽게 썩어버렸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향신료나 보석 같은 귀중품 위주로만 수입이 이루어졌고, 곡물은 대부분 자급할 수밖에 없었죠.


조선시대에 밀 농사를 얼마나 지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어요. 만약 그때도 지금처럼 자급률이 1% 수준이었다면, 들판에서 밀을 거의 볼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1930년대에 작성된 밀 재배 분포도를 보면, 농업이 본격적으로 근대화되기 이전이라 재배 지역이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 지도를 보면 황해도가 우리나라에서 밀 농사에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나타나요. 남한에서는 경북 의성 지역이 대표적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밀 재배 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이기도 해요. 이 시기에는 밀 품종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어요.


그러니까 밀은 원래부터 낯선 곡물이 아니라 우리 밥상과 농업 안에 깊이 들어와 있던 작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지금의 1% 자급률은 아주 최근에 만들어진 구조라는 점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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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한 알로 보는 세계사

우리는 지금 먹고사는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예전처럼 당장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과거에는 전혀 다른 예측이 있었어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밖에 늘지 않아서 결국 인류는 식량 부족으로 붕괴할 거라는 전망이었어요. 이 위기 예측을 뒤집은 사건이 바로 ‘녹색혁명’이에요.


녹색혁명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일어난 농업의 두 번째 혁명이에요. 전쟁에 쓰이던 화학 기술이 농업으로 전환되면서, 농약과 비료 제조 기술이 크게 발전했거든요. 비료를 만드는 공법과 화약을 만드는 기술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여기에 육종학이 발전하면서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선발할 수 있게 됐고,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농사 규모도 훨씬 커졌어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은 최소 4배, 많게는 8배까지 늘어났어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돌아보면, 이 전쟁들은 결국 식량전쟁이었다는 해석도 있는데요. 이런 배경 속에서 노먼 볼로그 박사라는 사람이, “전쟁을 막으려면 밀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과제를 맡게 돼요. 당시 서양의 밀은 키가 커서, 이삭이 무거워지면 쉽게 쓰러지고 썩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볼로그 박사는 전 세계의 밀 품종을 모아 연구하던 중, 일본의 ‘농림 10호’라는 유전자에 주목했어요. 이거의 원종이 우리가 아는 ‘앉은뱅이밀’이에요. 지금은 ‘앉은키밀’이라고 부르고 있죠. 이 밀이 일본을 거쳐 노먼 볼로그 박사에게 전해지면서, 키는 작고 이삭은 큰 밀을 전 세계에서 재배하게 됐어요. 또 이 밀을 기반으로 한 ‘소노라 품종’을 멕시코에 보급했더니 밀 생산량이 두 배로 늘었고요. 밀을 수입하던 나라가 수출국으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이 씨앗은 이후에 저개발 국가로 퍼졌고, 파키스탄과 중국에도 전해졌어요. 특히 중국에서는 밀 생산량이 최대 8배까지 증가했죠.


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인류는 굶주림에 대한 걱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이후 같은 방식의 연구가 쌀로 이어졌고, 그다음에는 옥수수로 확장됐어요.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밀, 쌀, 옥수수는 모두 육종 기술, 비료, 농기계 발전이 함께 작용하면서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을 네 배 가까이 끌어올린 작물들이에요. 그 덕분에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과거처럼 절박하게 느끼지 않게 됐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이 어떤 한계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냈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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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밀 자급률은 왜 1% 남짓일까?

과거에는 국산 밀 자급률이 15% 안팎이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자급률이 크게 낮아진 이유는, 단순히 농업의 문제라기보다 국가의 경제 정책과 깊이 맞닿아 있어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경제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한 개방경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어요. 이때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김재익이에요. 김재익은 당시 정부의 경제 설계자 역할을 했고, 그가 주도한 보고서와 정책 방향이 이후 한국 경제의 기본 노선이 되었어요. 전략은 비교적 명확했어요. 자동차처럼 국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은 적극적으로 수출하고, 경쟁력이 없다고 여겨진 분야는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밀은 가장 먼저 개방된 품목이었어요. 관세가 철폐되면서 누구나 외국에서 밀을 들여와 제분해 판매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죠. 지금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밀에 관세가 없는 나라예요. 이런 조건에서 국산밀이 가격 경쟁력을 갖기란 사실상 어렵죠. 소비자 입장에서도 굳이 더 비싼 국산밀을 선택할 이유를 찾기 힘들고요. 그 결과 1991년에는 밀 자급률이 0.1%까지 떨어졌어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10% 정도는 자급하던 밀이, 종자조차 구하기 어려울 만큼 사라졌죠. 말 그대로 국산밀의 씨가 말랐던 거예요. 


이때 위기를 느낀 건 국가가 아니라 농민들이었어요. 농민들을 중심으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됐는데요. 당시 약 16만 명이 참여해 32억 원을 모았는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농업 펀드였어요. 이 종잣돈을 바탕으로 우리밀 계약재배가 시작됐고,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산밀 자급률은 여전히 1%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숫자만 보면 너무 작고, 별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변화는 늘 1%에서 시작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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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밀과 수입밀의 차이?

국산밀과 수입밀의 차이가 궁금할 수 있어요. 먼저 많이들 오해하는 지점부터 짚어볼게요. 밀의 ‘원종’만 놓고 보면 국산밀과 수입밀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밀 품종 가운데 상당수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토종 밀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에요. 


차이는 주로 어떻게 이동하고, 어떻게 관리되느냐에서 생겨요. 이걸 잘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어요. 1999년에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실험을 했어요. 바구미라는 곡물 해충 200마리를 국산밀가루와 수입밀가루에 각각 똑같이 넣어본 거예요. 결과가 꽤 충격적이었어요. 국산밀가루에서는 바구미가 살아 있었는데, 수입밀가루에서는 바구미가 모두 죽어있던 거예요. 이 실험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어요. “바구미도 못 먹는 밀가루를, 사람은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죠. 


수입밀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보면 이해가 돼요. 수입밀은 짧게는 8,000km 이상을 이동해서 들어와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적도를 지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곰팡이나 해충이 생기지 않도록 매우 강한 관리가 필요해요. 그래서 수분을 10% 이하로 완전히 말리거나, 저장과 운송 과정에서 해충을 막기 위한 처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요.


당시에는 수입밀에 대해 지금처럼 명확한 기준이나 관리 체계도 거의 없었어요. 검사 체계 자체가 부족했고, 어떤 처리가 이뤄지는지 소비자가 알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이 실험 결과가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꽤 큰 논란이 일었어요.


흥미로운 건, 약 10년 뒤 같은 실험을 다시 했을 때예요. 그때는 결과가 달랐어요. 수입밀가루에서도 바구미가 죽지 않았어요. 이는 수입밀 유통 과정에서의 약제 사용이 줄었거나, 관리 방식이 바뀌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어요. 이 변화는 그냥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우리밀 운동처럼 작은 1%의 문제 제기가 만들어낸 압력이 쌓인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1%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말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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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산밀은 또 다른 오해를 받아왔어요. 제분이나 제빵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품질의 좋고 나쁨’보다 균일성이에요. 매번 같은 밀가루가, 같은 성질로, 안정적으로 공급되는지가 중요하거든요. 국산밀의 품질이 나쁜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개별 품질만 놓고 보면 매우 우수한 경우도 많아요.


문제는 물량이에요. 현재 국산밀 자급률이 1% 수준이다 보니, 생산량 자체가 너무 적어요. 대형 제분 시설에서는 최소 5만 톤 정도가 있어야 주 단위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요. 그런데 지금 국산밀 전체 생산량은 약 3만 톤 수준에 그쳐요. 양이 부족하다 보니 품질을 균일하게 맞추기가 어렵고, 산업적으로 활용되기 힘든 구조가 되는 거예요.


자급률이 10%가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렇다면 자급률이 10% 정도로 올라가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자급률이 1%인 상태에서는 사실상 가격을 결정할 힘이 없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밀가루 가격이 크게 오른 걸 체감하고 계실 거예요. 예전에 먹던 빵값과 지금의 빵값이 다르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어요.

일본을 보면 대비가 돼요. 일본은 수입밀에 관세를 붙인 상태로 사용하고 있는데도, 라면이나 빵 가격이 한국만큼 급격하게 오르지는 않았어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식품회사들이 밀가루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내고 있는 구조예요. 만약 국산밀 자급률이 10% 정도만 된다면, 시장에서 최소한의 협상력과 가격 조정력을 가질 수 있어요. 그때부터는 밀 가격을 전적으로 외부 상황에 맡기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생길 수 있어요.


결국 국산밀과 수입밀의 차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 구조, 선택권의 문제에 더 가까워요.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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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밀의 미래

이제는 기후변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기후변화를 말할 때 농업의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크거든요. 농업이 산업으로 분류돼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먹거리의 생산·가공·운송·소비 전 과정을 합치면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30% 안팎이 먹거리 부문에서 나온다고 보고돼요.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이 기후위기와 직접 연결돼 있다는 뜻이에요.


여기에는 농산물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도 모두 포함돼요. 특히 밀처럼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작물은 푸드마일리지가 아주 커요. 긴 이동 자체가 에너지와 탄소를 계속 소모하는 구조라는 뜻이에요. 만약 이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비용을 실제 가격에 반영하는 ‘탄소세’를 제대로 매긴다면, 수입밀은 국산밀보다 훨씬 비싸질 가능성이 커요.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비용 차이가 날 수도 있어요.


현재 대한제분협회 소속 제분업체들은 대부분 수입밀을 사용하고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이들이 가장 강조해 온 키워드는 ‘안전성’이에요. 앞서 있었던 바구미 사건이 업계에 큰 충격을 줬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로 저장·유통 관리 기준은 강화됐지만, 동시에 국제 정세 변화로 수입밀 가격은 크게 올랐어요. 실제로 수입밀 가격은 2018년과 비교하면 현재 두 배 이상 올랐어요. 그 사이에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 코로나19 팬데믹, 전쟁과 물류 위기 같은 사건들이 연달아 있었죠. 예전에는 국산밀과 수입밀 가격 차이가 네 배 이상 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차이가 약 두 배 정도로 줄어든 상태예요. 다시 말해 국산밀의 가격 경쟁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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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후변화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 달라질 수 있어요. 환경단체와 국제기구 보고를 보면, 2035년쯤 되면 지구 온도 상승으로 곡물 생산량이 20~30% 감소할 수 있다고 해요. 그렇게 되면 국산밀의 가격이 오히려 더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요. 정부가 국산밀 자급을 위해 지원 정책을 펼친다면, 그건 응원해야 할 일이에요. 결국 국민의 밥상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2011년에 있었던 ‘쟈스민 혁명’, 이른바 아랍의 봄도 배경을 들여다보면 밀값 상승과 식량 가격 불안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어요. 식량이 불안해지면 사회가 흔들리고, 결국 정치와 국가 안정성까지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식량 문제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국가의 문제로 이어져요.


북한의 식량 자급률은 100%예요. 모든 걸 막아둔 구조라 수출도 수입도 거의 없어요. 대신 자급이 가능하죠. 한국에 비해선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오히려 더 높아요. 최근에는 기후변화 영향으로 쌀·옥수수 중심이던 주식 구조가 점차 쌀과 밀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해요. 예전에는 추워서 단작만 가능하던 황해도 일부 지역에서 이제는 이모작이 가능해졌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고요.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이어져요. 밀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기후와 경제, 정치, 그리고 우리의 선택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밀이 자라기를 원하는지, 어떤 구조를 지지할지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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