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talk]"서로가 그늘이 되어 주는 밭을 만들고 싶어요" 반팜 반윤욱 농부님과의 대화

밭에서 식탁으로, 농부와 시민이 마주 앉은 저녁

f22114ca51c49.jpeg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에게 채소 꾸러미를 설명하는 벗밭의 기현



매일의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에 지쳐갈 때, 그 일상을 깨고 2주에 한번 도심 속 한 장소에 모이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행위를 넘어, 제철의 감각을 깨우고 생산과 가까운 식사를 일상으로 가져오려는 '퇴근 후 마르쉐' 식구들입니다. 

지난 6월 중순에 열린 두 번째 식탁은 <반팜> 반윤욱 농부님과 함께했습니다. 멀리 강화에서 꾸러미를 가득 들고 오신 농부님께서 식재료 하나하나 소개해 주셨는데요. 쥬키니, 비트 같은 친숙한 채소부터 베르가못, 잉글리쉬 라벤더 같은 허브와 꽃들. 그리고 머윗대, 생강나무잎, 산초잎까지. 꽃과 허브를 좋아하는 농부님의 섬세한 마음이 담긴 풍성한 꾸러미였습니다.

퇴근후마르쉐를 통해 농부님을 뵙고, 당일에 수확한 채소로 요리하다 보면 감사함은 자연스러운 결론이 됩니다. 가져오신 한련화만큼이나 아름다웠던, 반윤욱 농부님과의 대담을 전합니다. 


2a995c4a92388.jpeg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반윤욱 농부님


수빈: 안녕하세요 농부님, 인터뷰를 읽을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반윤욱 농부님: 안녕하세요, 강화군 양사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반윤욱입니다. 산과 밭, 대지를 합쳐서 땅이 4천 평 정도 되는데, 그 중 밭이 800평이고 실제로 농사짓는 건 4~500평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산에서는 산마늘을 기르거나 채집하기도 하고요. 요즘 저는 스스로 '중간을 찾는 농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빈: 중간을 찾는 농부요? 

반윤욱 농부님: 가능한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저는 이미 개입을 했고, 자연도 지키면서 지속 가능하게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 사이에서 중간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농사를 짓는 농부라고 생각하고 있죠.

수빈: 아까 참여자 분들 앞에서 자기소개 하실 때,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시고 농사를 시작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반윤욱 농부님: 처음엔 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타샤 튜더가 가꾼 정원처럼 아름다운 공간을 갖고 싶었거든요. 실제로 그렇게 살아 보고 싶기도 했고요. 책으로 타샤 튜더의 정원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은 맨발로 정원을 거닐고 옷도 손수 만들어 입고, 전기도 안 쓰고 그러잖아요. 퇴직 후에 땅을 오가면서, 여기를 멋진 정원으로 만들어놓으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도 수입이 생기고 먹고살 수 있겠다 싶었죠.

수빈: 제가 전에 농부님 밭에 갔을 때 마치 정원처럼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반윤욱 농부님: 문제는 거기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개발허가가 안 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게 농사여서 조금씩 짓기도 하고, 정원을 꾸미기도 하면서 꾸준히 땅의 모양을 잡아가려고 많이 애를 썼죠.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다 보니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지역 로컬푸드에 납품을 시작하면서 농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그즈음 마르쉐를 알게 됐고, 작년 봄에 목동 시장에서 처음 출점했어요. 어떻게 팔 건지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마르쉐를 만나게 된 거죠.


c89415ddf57d9.jpeg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에게 당일 수확한 채소를 소개하는 반윤욱 농부님

봄이 되면 들풀로 된장을 만들어 먹어요

수빈: 오늘 머위 된장이라든지, 메뉴도 직접 제안해 주셨잖아요. 요리에 관심이 있는 편이세요?

반윤욱 농부님: 한 때 요리사가 되려고도 생각한 적도 있어요. 젊다면 한 번 더 꿈꿔 볼 만한데… 제가 머위를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 풀을 배우는 학교를 다니고 있거든요. 거기서 올봄에 풀 담북장을 만들었어요. 냉이, 민들레, 머위 같은 걸 다져 넣어서 메주랑 섞어 염도 맞추고, 그렇게 발효시키는 거예요.

수빈: 풀 된장은 처음 들어봐요! 향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반윤욱 농부님: 밭에서 나오는 풀들이 된장이랑 잘 어울려요. 만들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계속 발효가 되는데, 그걸로 무침이든 비빔이든 다 돼요. 하나 만들어 놓으면 뭐든 비벼 먹을 수 있죠. 말하는데 침이 고이네요. (웃음)

수빈: 제가 냉이를 참 좋아하는데, 내년 봄에 냉이로 된장을 꼭 만들어봐야겠어요!

반윤욱 농부님: 냉이도 좋죠. 잔뿌리가 많은 애들이 겨울 동안 토양에서 온갖 효소랑 미네랄을 다 끌어모으거든요. 그 잔뿌리가 토양을 정화하기도 해서 깨끗한 땅에서 자란 걸 먹는 게 중요해요. 오염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이유가, 그 오염 물질을 빨아들여서 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거든요.



331816262e67a.jpeg사진 : 농부님이 가져오신 부추, 방아로 만든 전과 오이냉국(좌), 머위로 만든 머위 된장(오)

서로가 그늘이 되어주는 밭을 만들고 싶어요

수빈: SNS 프로필에 퍼머컬처 디자이너라는 문구를 쓰셨더라고요. 퍼머컬처를 언제부터 실천하셨는지, 또 퍼머컬처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도 궁금해요. 

반윤욱 농부님: 기본적으로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농사 방법이에요. 재작년 봄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 3년 됐네요. 퍼머컬처는 자연의 형태를 닮은 밭을 만드는 거기도 해요. 꽃잎이나 나뭇잎을 자세히 보면 패턴이 있는데, 그게 오랫동안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최적의 모양이거든요. 그 패턴을 밭으로 구현하면 에너지의 흐름이나 영양분을 분해하는 데 유리한 구조가 된다는 원리예요. 저는 혼자 하다 보니까 완벽하게 못 따라가지만, 직선으로는 만들지 말라고 해서 굼벵이 모양이나 소용돌이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었죠.

수빈: 저도 농부님 밭에서 본 것 같아요. 소용돌이처럼 원형으로 생긴 밭이요!

반윤욱 농부님: 그게 맞을 거예요. 두둑을 높이 둬서 물이 위에서 흘러내리면서 아래를 감싸는 구조예요.

수빈: 그러면 농부님은 퍼머컬처 디자이너로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으신가요?

반윤욱 농부님: 우선은 멀칭이예요. 검은 비닐을 씌우는 비닐 멀칭이 아니라 유기물로 두둑밭을 덮는 거죠. 유기물이 서서히 분해되면서 땅이 숨을 잘 쉬게끔 때알구조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탄소 배출도 억제하고요. 또 저는 다년생 식물을 70%로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해요. 그 밭을 숲밭처럼 유지하려면 저절로 그 자리에서 자라는 애들이 70%는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면 그 다년생들 아래에 내가 먹고 싶은 일년생을 심는 거예요. 식물이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조한다고, 나무 두 그루가 뿌리로 연결돼서 한쪽이 말라 죽어갈 때 다른 쪽에서 물을 보내준다는 연구도 있어요. 그 생태계 구조를 만들어주는 게 퍼머컬처예요.

수빈: 이야기 들으면서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생각났어요. 큰 나무가 작은 나무의 그늘이 되어주듯이요!

반윤욱 농부님: 그렇죠. 큰나무 아래 작은 나무, 그 아래 관목층, 허브층(다년생), 그 아래 일년생. 이렇게 층을 두는 거예요. 요즘같이 직사광선이 강한 기후에는 오히려 약간 그늘진 밭이 잘 자라는 것 같아요. 서로가 그늘이 되어주는 밭을 만드는 거죠.

수빈: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을까요?

반윤욱 농부님: 밭을 갈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흙이 탄소를 보관하고 있는데, 갈면서 다 배출시키거든요.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달이 4~5월이에요. 봄에 일제히 다들 밭을 갈기 때문이죠.

수빈: 보통 냉방, 난방 때문에 여름이나 겨울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의외로 봄이라는 게 충격이었어요.

반윤욱 농부님: 의외죠. 그래서 저는 내 키만큼의 높이와 내가 농사짓는 면적만큼은 내 기후로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저희 밭은 가뭄도 덜하고, 식물이 무성해서 비가 와도 홍수 피해가 없어요. 숲에서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런 밭이 모자이크처럼 여기저기 늘어나면, 전체 기후층이 관리되는 거죠.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이유가 그거예요.


e77b70932429d.jpeg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이 가져가는 채소 꾸러미의 한 종류들 / 한련화, 적시소, 머위, 부추 등

꽃을 좋아해서 채소 옆에도 늘 꽃을 심어요

수빈: 반팜에서는 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 같은데요. 농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풍경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반윤욱 농부님: 저는 꽃을 좋아해서 채소 옆에도 늘 꽃을 심어요. 비올라 같은 건 씨가 떨어져서 저절로 나기도 하고요. 어떨 땐 꽃 보려고 일부러 수확을 안 할 때도 있어요. 다년생 비율을 유지하면 계절마다 뭔가가 피어 있어요. 늘 푸르고 늘 꽃이 있는 거죠. 저는 그 풍경이 좋아요.

수빈: 안 그래도 오늘 농부님이 가져와주신 꽃 덕분에 공간이 알록달록하더라고요! 저는 꽃을 보면 벌이 곧잘 떠오르는데, 농부님께서 마침 벌도 기르신다고 들었어요.

반윤욱 농부님: 처음엔 달콤한 꿀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저를 가르치는 벌 선생님이 “야생 꿀벌은 이미 자연 상태에서 거의 사라졌다”, “우리가 양봉하는 이유를 단순히 꿀이라 생각하지 말고,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자”는 말씀을 하더라고요. 누군가는 그 매개자 역할을 해야 하니까.

수빈: 벌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실감이 잘 안 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일이잖아요.

반윤욱 농부님: 마트에서 벌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전후 비교 사진이 있어요. 진열대에 놓여있는 채소와 과일 절반 이상이 비어버려요. 꽃가루 매개를 하는 작물들이 다 사라지는 거니까요. 그러면 물가가 올라가고, 부자들은 먹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못 먹게 되죠. 그런 걸 알고 나서는 벌을 기르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밭에 다양한 꽃을 심는 이유기도 하고요.

수빈: 그런 변화가 농부님 밭에서도 실제로 느껴지세요?

반윤욱 농부님: 요즘 같은 철에 농장에 가보면 나비가 말도 못 하게 많아요. 제 밭은 농약을 치지 않고, 밭에 꽃도 많다 보니 어디서 날아오는지… 새도 많고 반딧불이도 있어요. 워낙 사람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다 과일 농사가 적어서 농약 피해가 덜하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변화를 느끼죠.


22ec7062e7a1a.jpeg사진 : 이날 식탁 곳곳에는 농부님이 가져오신 꽃들이 놓여 있었다. 꽃을 애정하는 농부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들.


저는 실천 이전에 생각이 먼저라고 봐요.

수빈: 어느덧 시간이 벌써 다 되어가요. 오늘 이 자리에서 참여자 분들에게 농부님이 기른 채소를 소개하고, 요리해서 식사하는 경험이 어떠셨어요?

반윤욱 농부님: 이런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요. 내가 먹는 식재료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오시잖아요. 건강을 생각하고, 자연에 관심을 갖고… 사실 자연 속에 답이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직장 다니시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잖아요. 시간이 된다면 다들 저희 밭에도 오셔서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수빈: 농부님이 앞으로 만나고 싶은 시민들은 어떤 분들인지도 궁금해요.

반윤욱 농부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에요. 오늘처럼 퇴근후마르쉐에 참여하는 것이 단순히 나의 힐링을 위한 게 아니라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뭔가를 실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오늘 직접 트럭을 몰고 채소를 가지고 왔잖아요. 경유를 조금 썼지만, 여러분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는 대형 농장들이 모든 걸 유통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탄소 소비가 훨씬 많아져요. 가까이에 직거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거기서 사 먹고, 마르쉐가 가깝다면 거기서 사 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지구 환경을 위해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고 그런 분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요.

수빈: 이미 실천하고 있지만 스스로 잘 모르고 있는 분들에겐 농부님의 말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반윤욱 농부님: 알면 더 나아가게 되니까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또 하고 싶어지거든요. 저는 생각이 먼저라고 봐요. 실천을 많이 못 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생활에서 조금씩은 달라져 있어요.

건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몸에 좋은 건 사실 맛이 아니라 향이거든요. 오늘 드셔보셨겠지만, 채소엔 저마다 향이 있잖아요. 향이 살아있는 채소를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겠죠. 자연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고, 농부들이 지속 가능하게 농사지을 수 있도록 애정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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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2efa6f67afc.jpeg사진 : 농부님이 가져온 채소로 만든 오이냉국과(위) 완성된 플레이트를 들여다보는 퇴근후마르쉐 참여자의 모습(아래)


대담을 마치고 농부님과 함께 앉은 식탁에는 여름 채소로 꾸린 식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생강나무잎을 우려낸 물로 지은 뽕잎밥과 부추방아전, 산초간장, 오이냉국과 머위 된장까지. 참여자가 남긴 소감처럼 여름이 물씬 다가오는 한상이었어요.

“내 키만큼의 높이와 내가 농사짓는 면적만큼은 내 기후로 관리하겠다"는 농부님의 말을 들으며, 나에게 기회는 이미 주어져 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거창한 실천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은,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요.

벗밭과 마르쉐가 함께 만들어가는 ‘퇴근 후 마르쉐’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자기 안의 밭을 발견하고, 먹거리 안에서 농부와 밭을 떠올리는 경험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수빈 (벗밭 @but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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