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6일
인터뷰어: 수빈(벗밭) / 인터뷰이: 윤 님
퇴근 후 네 번 모여 함께 밥을 먹습니다
사진 : 채소 꾸러미를 포장하는 참여자와(왼)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오)
매일의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에 지쳐갈 때, 그 일상을 깨고 2주에 한 번 도심 속 한 장소에 모인 시민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행위를 넘어, 제철의 감각을 깨우고 생산과 가까운 식사를 일상으로 가져오려는 '퇴근후마르쉐' 식구들입니다.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일, 생산자를 알아가는 일,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매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여름의 한가운데, 퇴근후마르쉐 여름 편의 참여자였던 윤 님을 만났습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 중인 윤 님에게 퇴근후마르쉐는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윤 님과 나눈 대화와 함께, 네 번의 식탁에서 나눈 꾸러미와 메뉴를 소개합니다.
사진 : 마르쉐 시장에서 가져온 채소 꾸러미를 소개하는 벗밭 기현(왼)과 참여자들이 집으로 가져갈 채소 꾸러미(오)
그전까지는 요리해서 챙겨 먹을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수빈: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몸과 마음이 어떤지 먼저 묻고 싶어요. 오늘 컨디션이 어떠세요?
윤: 실은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쉬어가는 중이에요. 뭔가에 너무 집중하면 몸이 버거워질 때가 있어서 힘을 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제가 느릿느릿 말할 수도 있어요.
수빈: 제 추구미가 천천히 말하는 거라 오히려 좋아요. 잠시 쉬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무얼 하며 쉬고 계세요? 저도 마침 지금 휴가라,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요.
윤: 최근에 영화 <HOPE>를 영화관에서 봤어요. 추천해 드리긴 조심스럽지만 간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니 재밌더라고요. 액션 장면이 중간에 나오는데, 집에서 작은 모니터로 보면 그 액션감을 절대 못 느끼겠더라고요. 만약에 보실 거면 꼭 영화관에서 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수빈: 안 그래도 저도 휴가 동안 볼 영화를 주변에서 추천받아서 리스트를 만들었거든요. 영화를 본 지 오래돼서 어색하긴 한데, 시도해 봐야겠어요.
윤 : 수빈 님은 컨디션이 어떠세요?
수빈 : 저는 오늘 너무 좋아요. 휴가 기간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안한 상태예요. 오늘 인터뷰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잘 듣는 게 목적이라서 마음이 가벼워요.
사진 : 2회차- 반팜 반윤욱 농부님이 가져온 채소 꾸러미와 꽃잎을 바라보는 참여자
수빈 : 퇴근후마르쉐는 어떤 이유로 신청하게 되셨어요?
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사전 설문에서 '식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기대한다고 썼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수빈: 실제로 참여해보니 어떠셨어요?
윤: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지는 않더라고요. 근데 그게 오히려 좋았어요. 기현(벗밭) 님 에너지가 저한테 무척 흥미로웠거든요. 요리하는 모임이라 흐름이 복잡하고 섬세하게 이루어질 것 같았는데, 탁탁탁 단순하게 흘러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나도 그냥 해보자, 싶었죠. 특히 첫 회차에 기분이 정말 좋았던 게, 제가 그 직전까지 계속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거든요. 요리해서 챙겨 먹을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제철 채소를, 더군다나 오늘 아침에 수확한 걸 먹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수빈: 맞아요. 참여자분들이 처음에 들어오실 때는 퇴근 직후라 표정들이 어두우신데, 채소 꾸러미를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도시거든요. 저는 그런 표정 변화를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윤: 지금 말하면서 또 하나 생각났어요. 제가 재작년까지 제철 식재료로 요리 수업하시는 선생님 옆에서 보조 강사를 했었어요. 그때 아침마다 채소 손질하면서 막 예뻐하고, 힐링하면서 일했거든요. 퇴근후마르쉐 첫회차에서 오랜만에 그 느낌이 확 올라왔어요. 식재료 만지면서 기분 전환되는 느낌. 다른 요리 수업에서는 배워가야 한다는 생각이 크니까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여기는 다들 “어떻게 할까요?”라면서 서로 막 던져보잖아요. 그런 러프함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수빈: 명절 식구처럼 의기투합하는 분위기가 있죠! 첫회차에 먹었던 메뉴 중에는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으세요?
윤: 마늘쫑비빔밥이요. 맛도 맛인데 너무 예뻤어요. 집에 와서 꼭 해봐야겠다 싶어서 마늘쫑으로 밥을 했거든요. 근데 살짝 데쳐서 섞어야 하는 건데 그냥 밥에 넣어버린 거예요. 그랬더니 완전 죽이 됐어요.
수빈: 아이고 그랬구나!
윤: 데치는 걸 귀찮아하지 말걸. 그랬으면 그 기쁨을 집에서 한 번 더 느꼈을 텐데 싶어요. 저는 요리 자체는 시작하면 즐거운데, 하기까지가 귀찮아요.
수빈: 기획 노동이잖아요, 요리라는 게. 메뉴 정하고 레시피 찾고, 장도 봐야하고…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 같아요. 그런 점에서 시도한 게 너무 대단하다!

사진 : 1회차 꾸러미와 함께 먹은 음식. 마늘쫑비빔밥과 채소구이, 샐러드와 페스토를 함께 먹었다.
1회차 꾸러미
생활 | 로메인 상추 (숲속엄마) / 당근 (마콩농장) / 대추방울토마토 (건강한농부네)
계절 | 마늘쫑, 마늘 (꽃비원) / 마지막 노지시금치 (초록손가락) / 양파 (찬우물)
어디한번 | 박하, 이탈리안파슬리, 채소꽃(루꼴라, 무, 고수) (초록손가락) / 노랑 주키니 (오후텃밭) / 비트 (초록손가락, 파파팜앤밀마운트) / 깍지완두 (찬우물) / 이탈리안 파슬리
1회차 메뉴
마늘쫑비빔밥 / 채소구이와 두부 딥소스 / 채소샐러드와 페스토
생각을 삶으로 실천하는 농부님의 모습이 제게 위안이 됐어요
수빈: 2회차 때 반팜 반윤욱 농부님을 만났잖아요. 생산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윤: 그날 되게 위안을 얻었어요. 안심이 됐다고 해야 할까요. 정확한 단어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깊은 위로를 받았어요.
수빈: 어떤 부분에서 그런 마음이 드셨어요?
윤: ‘어떻게 해야 진심으로 살 수 있지’가 요즘의 제 화두인데, 농부님이 바로 그런 진심인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농부님은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무언갈 하고 있고, 그걸로부터 얻어진 작물도 자신 있어 하시고 또 좋아하시고, 이걸 나누고 싶어 하잖아요. 사람이 진심일 때 그런 에너지가 나온다고 느끼거든요. 일이다 보니 당연히 노고가 있으시겠지만, 그렇게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어요. 그렇게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나도 저런 태도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빈: 농부님이 시작하실 때 참여자분들한테 말도 걸어주시고, 궁금한 거 다 물어보라고 해주셨잖아요. 그런 열린 태도를 보면서 진짜 너무 좋다, 또 언제 우리가 이런 도심에서 농부님을 만나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겠어요. 그 시간이 되게 생경하더라고요. 은퇴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얘기나 퍼머컬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서 좋았어요. 최근에 농장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너무 좋았을 거 같아요.
윤: 너무너무 좋았어요. 제가 반팜 농장에 가기 전에 농부님 인터뷰를 읽었는데요. 꽃을 다양하게 키우는 이유가 벌들을 위해서라는 내용이 있잖아요. 저는 그냥 미적 감각으로 꽃을 좋아하시나 보다 싶었는데, 벌이 좋아하는 꽃을 심으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농장에서 꽃을 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그 생각을 매일 삶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고 그게 기억에 남았어요.
수빈: 아이고 인터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저도 당시에 농부님과 대화하면서 벌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같은 마음을 느끼셨다니 기뻐요. 2회차 때 농부님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어떠셨어요?
윤: 머위된장이랑 오이냉국이 맛있었어요. 정구지방아전과 적시소 음료를 생각해보면 제가 즐겨먹는 맛과 다르긴 한데요.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맛의 레이어를 먹은 거 같아서 즐거웠어요. 농부님이 하나하나 맛을 얼마나 신경 쓰시는지도 보였고요.
사진 : 농부님이 가져온 채소로 참여자들이 함께 만든 음식들. 뽕잎밥과 정구지방아전, 오이냉국, 머위된장을 함께 먹었다.
2회차 꾸러미 (강화에서 온 반팜 꾸러미)
쥬키니, 비트, 껍질완두
허브 / 베르가못, 오레가노, 레몬버베나, 잉글리쉬 라벤더
꽃 / 토종백합, 베르가못꽃, 한련화, 보리지 등
마늘 / 머윗대
정구지(부추) / 방아
샐러드팩(토스카나케일 등)
생강나무잎 / 적시소 / 산초잎
2회차 메뉴 (with 반팜 반윤욱 농부님)
뽕잎밥 / 정구지방아전 / 오이냉국 / 머위된장
퇴근후마르쉐하면 ‘식구’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수빈: 채소 꾸러미는 집에서 어떻게 해 드셨어요? 손이 잘 가는 식재료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요.
윤: 지금 떠오른 건 로메인인데, 샐러드로 먹거나 여러 방면에서 먹기 좋아서 손이 잘 가더라고요. 또 저는 집에서 최대한 간단하게 요리하는 편인데, 감자는 그냥 삶으면 되니까 쉬워서 좋았고요. 노루궁뎅이버섯도 기억에 남아요. 밥이랑 어우러진 맛이 너무 좋아서 집에 와서 냉동시켜 뒀어요. 당분간 집에서 밥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중에 밥 지을 때 그 맛을 구현해 보고 싶어서요.
수빈: 퇴근후마르쉐 채소 꾸러미는 감자 같이 익숙한 채소도 있고, 셀러리 같은 낯선 채소도 있는데 그게 좋더라고요. 혼자 장 볼 때는 늘 먹던 것만 먹으니까 낯선 채소는 손이 잘 안 가게 되잖아요. 사람들이랑 같이 요리하면 생각보다 낯선 채소도 맛있게 느껴져서 심리적인 장벽이 내려가는 것 같아요. 다른 참여자분들과 함께 요리해서 먹는 경험은 어떠셨어요?
윤: 4회차 때, 제가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한 주 내내 식욕이 없었는데 그 날 신기하게 밥이 잘 들어가더라고요. 마지막 회차 때는 벗밭 팀이 농장에 직접 가서 채소를 픽업한다고 하길래 같이 농장에 갔거든요. 아침에 건네주신 빵도 잘 먹고 점심으로 먹은 칼국수도 평소처럼 먹었어요. 저녁도 한 접시를 다 먹었고요. 집에서는 이만큼 먹기 힘든데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면 먹히는 게 신기했어요.
수빈: 그게 윤 님이 사후 설문에 적어주신 '식구'라는 단어랑 연결되는 것 같아요.
윤: 맞아요. 우리가 식재료도 함께 나누고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먹는 과정까지 같이 했잖아요. 4회차 소감 나눌 때 문득 ‘이게 食口구나.’싶었어요. 단순히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이 식사를 같이 준비하고 나누고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요. 또 모임 때 긴장도가 높아 보였던 분이 계셨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편안해지는 게 보이는 거예요. 퇴근후마르쉐를 아예 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하게 되면 진짜 뭔가 진한 게 나오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수빈 : 그런 재미를 알아차리셨다니! 저는 아무래도 촬영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까 참여자분들을 유심히 관찰할 때가 많은데요. 그분들의 변화를 포착하는 게 저만의 소소한 기쁨이고 즐거움이었거든요. 윤 님도 그걸 느끼셨다니 신기해요.
사진 : 3회차에 함께 먹은 음식. 버섯밥, 가지고추볶음, 오이탕탕이와 가지조림 등을 함께 먹었다.
3회차 꾸러미 (@하지)
생활 | 두부 (아빠맘두부) / 강화오이 (구목마을곰씨네농장)
계절 | 하지감자 — 분홍, 자영, 자황 (수고로운 & 마콩농장) / 대극천복숭아 (어봉지길)
어디한번 | 호랑이강낭콩 (구목마을곰씨네농장) / 다양한 가지 (마콩농장) / 노루궁뎅이버섯 (송이뜰농장)
3회차 메뉴
버섯밥 / 가지고추볶음 / 오이탕탕이 / 감자조림 / 비네그레트 감자샐러드
식사의 기준이 머리에서 마음으로 온 것 같아요
수빈: 사후 설문에서 '좋은 식사'의 기준 순위를 바꾸려고 고민하셨다가 결국엔 안 바꾸셨잖아요.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윤: 마지막 회차 때 벗밭 기현, 가영 님과 하루를 보내면서 정말 즐거웠거든요. 또 함께 먹으니까 평소보다 밥도 더 잘 먹게 됐고요. 그런 의미에서 즐거움이 잠깐 2순위로 올라왔어요.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저는 1인 가구고, 제일 자주 하는 식사가 혼자 먹는 식사인 거예요. 그러면 꾸준히 좋은 재료로 먹는 게 더 중요하겠다 싶어서 다시 원래대로- 몸과 건강 > 재료와 품질 > 감각과 경험을 1, 2, 3위로 선택했어요. 즐거운 식사도 중요하지만, 저한테는 결국 좋은 재료를 먹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수빈: 1인 가구라는 특성이 식사 기준에 미치는 영향을 윤 님을 통해서 알게 된 거 같아요.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라 흥미로워요!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좋은 식사의 우선순위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 밖의 다른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윤: 전에는 ‘이런 식재료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살아가는 건 저한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머리보다 마음에 더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예전에는 그래야지가 있었다면, 이제는 ‘나 정말로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로 바뀐 느낌이랄까요. 좀 더 진심이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오늘 수빈 님과 대화하면서 생각난 건데요, 제가 식생활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더 잘해봐야지 하면 그게 저한테 어려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더라도 방향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어찌 됐든 조금씩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다시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수빈 : 방금 해주신 말씀이 저한테 무척 필요한 말이에요. 예전에 제가 비거니즘을 실천하면서, 지향성은 큰데 현실은 장벽이 너무 많고 크니까 늘 제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한때는 그런 마음이 버거워서 비건 지향 생활을 포기하려고도 했었어요. 윤 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식생활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반윤욱 농부님과도 전에 대화하면서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을 하면 내 일상이 어떻게든 조금씩 변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저에게 큰 위안이 됐거든요.
사진 : 4회차 꾸러미에 담긴 채소로 함께 만든 요리. 구운 옥수수와 주먹밥, 오크라구이, 콩장아찌를 함께 먹었다.
4회차 꾸러미 (강화에서 온 반팜 꾸러미)
깻잎 / 호박잎 / 바질 / 옥수수 / 아카시꿀 / 오크라 (feat. 이웃 마콩농장)
4회차 메뉴
구운 옥수수와 주먹밥, 오크라 구이, 콩장아찌
수빈: 마지막으로, 윤 님에게 퇴근후마르쉐란 무엇인가요? 다소 쑥스러운 질문이지만 던져봅니다(웃음).
윤: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이미 존재하던 연결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낸다기보다,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는데 그걸 인지하게 해줬달까요. 그러면서 제 안에서 식사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초점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전에는 나 혼자서 살아간다는 감각이 강해서, 좋은 재료를 골라 건강하게 먹고 잘 돌보는 것에 마음을 썼다면, 지금은 내가 무엇을 먹느냐뿐 아니라 그 재료를 누가 어떻게 길렀는지, 누구와 먹는지도 소중해졌어요. 벗밭 친구분들을 통해, 농부님들의 농작물을 먹음으로써 그분들이 지향하는 방식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고요. 그런 의미에서 식사가 나 혼자 잘 먹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는 감각이 생겼어요. 식사만을 위한 모임을 하다 보니, 식사하며 느낄 수 있는 풍요를 알게 돼서 좋아요.
수빈 : 크… 저는 오늘 대화가 정말 좋은 게, 저에게도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이 된 거 같아요. 윤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추구하는 식사는 어떤 걸까,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저에게 식사는 항상 미션이고 사적인 영역이라서 폐쇄적인 태도로 대했거든요. 그러다 퇴근후마르쉐 식구들을 관찰하면서, 네 번의 만남과 그로 인한 변화들이 마치 입체적인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인물이 있고, 계속해서 변하는 인물이 있잖아요. 퇴근후마르쉐는 내가 누구와 함께 식사하고 어떤 농부님을 만나고, 어떤 음식을 해 먹는지에 따라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그래서 굉장히 입체적인 소설 같아요. 정해진 답이 없는 입체적인 소설 같은 식사! 저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사를 해나가고 싶어요.
사진 : 반팜 농장에서 바질을 따고 있는 퇴근후마르쉐 여름편 참여자 윤 님
윤 님과의 대화는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 타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와 동네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습니다. 먹는 일만큼이나 삶도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두 시간 동안 우리가 나눈 것은 단지 먹는 것에서 나아가, 살아가고 싶은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더 나은 식사를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됐다는 윤 님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집에서 마늘쫑을 넣고 밥을 했는데 죽처럼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이거다! 싶었고요. 어쩌면 우리에겐 굳은 다짐이나 방법론이 아닌, 지향성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랑하고 연약한 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랑한 말과 마음이 누군가의 꺾어질 위기에 처한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흙과 벌, 농부와 시장 등 이미 존재하던 연결을 떠올리고 그것들에 기대어 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벗밭과 마르쉐가 함께 만들어가는 퇴근후마르쉐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먹거리 안에서 이미 존재하던 연결을 알아차리는 경험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퇴근후마르쉐는 2주에 한 번, 도심에서 농부의 밭과 계절을 잇는 식탁을 차립니다. 다음 가을 편에서 우리는 또 만나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수빈 (벗밭 @butground)
2026년 8월 6일
인터뷰어: 수빈(벗밭) / 인터뷰이: 윤 님
퇴근 후 네 번 모여 함께 밥을 먹습니다
매일의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에 지쳐갈 때, 그 일상을 깨고 2주에 한 번 도심 속 한 장소에 모인 시민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행위를 넘어, 제철의 감각을 깨우고 생산과 가까운 식사를 일상으로 가져오려는 '퇴근후마르쉐' 식구들입니다.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일, 생산자를 알아가는 일,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매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여름의 한가운데, 퇴근후마르쉐 여름 편의 참여자였던 윤 님을 만났습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 중인 윤 님에게 퇴근후마르쉐는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윤 님과 나눈 대화와 함께, 네 번의 식탁에서 나눈 꾸러미와 메뉴를 소개합니다.
그전까지는 요리해서 챙겨 먹을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수빈: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몸과 마음이 어떤지 먼저 묻고 싶어요. 오늘 컨디션이 어떠세요?
윤: 실은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쉬어가는 중이에요. 뭔가에 너무 집중하면 몸이 버거워질 때가 있어서 힘을 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제가 느릿느릿 말할 수도 있어요.
수빈: 제 추구미가 천천히 말하는 거라 오히려 좋아요. 잠시 쉬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무얼 하며 쉬고 계세요? 저도 마침 지금 휴가라,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요.
윤: 최근에 영화 <HOPE>를 영화관에서 봤어요. 추천해 드리긴 조심스럽지만 간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니 재밌더라고요. 액션 장면이 중간에 나오는데, 집에서 작은 모니터로 보면 그 액션감을 절대 못 느끼겠더라고요. 만약에 보실 거면 꼭 영화관에서 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수빈: 안 그래도 저도 휴가 동안 볼 영화를 주변에서 추천받아서 리스트를 만들었거든요. 영화를 본 지 오래돼서 어색하긴 한데, 시도해 봐야겠어요.
윤 : 수빈 님은 컨디션이 어떠세요?
수빈 : 저는 오늘 너무 좋아요. 휴가 기간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안한 상태예요. 오늘 인터뷰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잘 듣는 게 목적이라서 마음이 가벼워요.
수빈 : 퇴근후마르쉐는 어떤 이유로 신청하게 되셨어요?
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사전 설문에서 '식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기대한다고 썼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수빈: 실제로 참여해보니 어떠셨어요?
윤: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지는 않더라고요. 근데 그게 오히려 좋았어요. 기현(벗밭) 님 에너지가 저한테 무척 흥미로웠거든요. 요리하는 모임이라 흐름이 복잡하고 섬세하게 이루어질 것 같았는데, 탁탁탁 단순하게 흘러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나도 그냥 해보자, 싶었죠. 특히 첫 회차에 기분이 정말 좋았던 게, 제가 그 직전까지 계속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거든요. 요리해서 챙겨 먹을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제철 채소를, 더군다나 오늘 아침에 수확한 걸 먹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수빈: 맞아요. 참여자분들이 처음에 들어오실 때는 퇴근 직후라 표정들이 어두우신데, 채소 꾸러미를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도시거든요. 저는 그런 표정 변화를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윤: 지금 말하면서 또 하나 생각났어요. 제가 재작년까지 제철 식재료로 요리 수업하시는 선생님 옆에서 보조 강사를 했었어요. 그때 아침마다 채소 손질하면서 막 예뻐하고, 힐링하면서 일했거든요. 퇴근후마르쉐 첫회차에서 오랜만에 그 느낌이 확 올라왔어요. 식재료 만지면서 기분 전환되는 느낌. 다른 요리 수업에서는 배워가야 한다는 생각이 크니까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여기는 다들 “어떻게 할까요?”라면서 서로 막 던져보잖아요. 그런 러프함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수빈: 명절 식구처럼 의기투합하는 분위기가 있죠! 첫회차에 먹었던 메뉴 중에는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으세요?
윤: 마늘쫑비빔밥이요. 맛도 맛인데 너무 예뻤어요. 집에 와서 꼭 해봐야겠다 싶어서 마늘쫑으로 밥을 했거든요. 근데 살짝 데쳐서 섞어야 하는 건데 그냥 밥에 넣어버린 거예요. 그랬더니 완전 죽이 됐어요.
수빈: 아이고 그랬구나!
윤: 데치는 걸 귀찮아하지 말걸. 그랬으면 그 기쁨을 집에서 한 번 더 느꼈을 텐데 싶어요. 저는 요리 자체는 시작하면 즐거운데, 하기까지가 귀찮아요.
수빈: 기획 노동이잖아요, 요리라는 게. 메뉴 정하고 레시피 찾고, 장도 봐야하고…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 같아요. 그런 점에서 시도한 게 너무 대단하다!
사진 : 1회차 꾸러미와 함께 먹은 음식. 마늘쫑비빔밥과 채소구이, 샐러드와 페스토를 함께 먹었다.
생각을 삶으로 실천하는 농부님의 모습이 제게 위안이 됐어요
수빈: 2회차 때 반팜 반윤욱 농부님을 만났잖아요. 생산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윤: 그날 되게 위안을 얻었어요. 안심이 됐다고 해야 할까요. 정확한 단어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깊은 위로를 받았어요.
수빈: 어떤 부분에서 그런 마음이 드셨어요?
윤: ‘어떻게 해야 진심으로 살 수 있지’가 요즘의 제 화두인데, 농부님이 바로 그런 진심인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농부님은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무언갈 하고 있고, 그걸로부터 얻어진 작물도 자신 있어 하시고 또 좋아하시고, 이걸 나누고 싶어 하잖아요. 사람이 진심일 때 그런 에너지가 나온다고 느끼거든요. 일이다 보니 당연히 노고가 있으시겠지만, 그렇게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어요. 그렇게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나도 저런 태도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빈: 농부님이 시작하실 때 참여자분들한테 말도 걸어주시고, 궁금한 거 다 물어보라고 해주셨잖아요. 그런 열린 태도를 보면서 진짜 너무 좋다, 또 언제 우리가 이런 도심에서 농부님을 만나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겠어요. 그 시간이 되게 생경하더라고요. 은퇴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얘기나 퍼머컬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서 좋았어요. 최근에 농장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너무 좋았을 거 같아요.
윤: 너무너무 좋았어요. 제가 반팜 농장에 가기 전에 농부님 인터뷰를 읽었는데요. 꽃을 다양하게 키우는 이유가 벌들을 위해서라는 내용이 있잖아요. 저는 그냥 미적 감각으로 꽃을 좋아하시나 보다 싶었는데, 벌이 좋아하는 꽃을 심으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농장에서 꽃을 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그 생각을 매일 삶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고 그게 기억에 남았어요.
수빈: 아이고 인터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저도 당시에 농부님과 대화하면서 벌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같은 마음을 느끼셨다니 기뻐요. 2회차 때 농부님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어떠셨어요?
윤: 머위된장이랑 오이냉국이 맛있었어요. 정구지방아전과 적시소 음료를 생각해보면 제가 즐겨먹는 맛과 다르긴 한데요.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맛의 레이어를 먹은 거 같아서 즐거웠어요. 농부님이 하나하나 맛을 얼마나 신경 쓰시는지도 보였고요.
퇴근후마르쉐하면 ‘식구’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수빈: 채소 꾸러미는 집에서 어떻게 해 드셨어요? 손이 잘 가는 식재료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요.
윤: 지금 떠오른 건 로메인인데, 샐러드로 먹거나 여러 방면에서 먹기 좋아서 손이 잘 가더라고요. 또 저는 집에서 최대한 간단하게 요리하는 편인데, 감자는 그냥 삶으면 되니까 쉬워서 좋았고요. 노루궁뎅이버섯도 기억에 남아요. 밥이랑 어우러진 맛이 너무 좋아서 집에 와서 냉동시켜 뒀어요. 당분간 집에서 밥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중에 밥 지을 때 그 맛을 구현해 보고 싶어서요.
수빈: 퇴근후마르쉐 채소 꾸러미는 감자 같이 익숙한 채소도 있고, 셀러리 같은 낯선 채소도 있는데 그게 좋더라고요. 혼자 장 볼 때는 늘 먹던 것만 먹으니까 낯선 채소는 손이 잘 안 가게 되잖아요. 사람들이랑 같이 요리하면 생각보다 낯선 채소도 맛있게 느껴져서 심리적인 장벽이 내려가는 것 같아요. 다른 참여자분들과 함께 요리해서 먹는 경험은 어떠셨어요?
윤: 4회차 때, 제가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한 주 내내 식욕이 없었는데 그 날 신기하게 밥이 잘 들어가더라고요. 마지막 회차 때는 벗밭 팀이 농장에 직접 가서 채소를 픽업한다고 하길래 같이 농장에 갔거든요. 아침에 건네주신 빵도 잘 먹고 점심으로 먹은 칼국수도 평소처럼 먹었어요. 저녁도 한 접시를 다 먹었고요. 집에서는 이만큼 먹기 힘든데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면 먹히는 게 신기했어요.
수빈: 그게 윤 님이 사후 설문에 적어주신 '식구'라는 단어랑 연결되는 것 같아요.
윤: 맞아요. 우리가 식재료도 함께 나누고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먹는 과정까지 같이 했잖아요. 4회차 소감 나눌 때 문득 ‘이게 食口구나.’싶었어요. 단순히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이 식사를 같이 준비하고 나누고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요. 또 모임 때 긴장도가 높아 보였던 분이 계셨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편안해지는 게 보이는 거예요. 퇴근후마르쉐를 아예 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하게 되면 진짜 뭔가 진한 게 나오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수빈 : 그런 재미를 알아차리셨다니! 저는 아무래도 촬영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까 참여자분들을 유심히 관찰할 때가 많은데요. 그분들의 변화를 포착하는 게 저만의 소소한 기쁨이고 즐거움이었거든요. 윤 님도 그걸 느끼셨다니 신기해요.
식사의 기준이 머리에서 마음으로 온 것 같아요
수빈: 사후 설문에서 '좋은 식사'의 기준 순위를 바꾸려고 고민하셨다가 결국엔 안 바꾸셨잖아요.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윤: 마지막 회차 때 벗밭 기현, 가영 님과 하루를 보내면서 정말 즐거웠거든요. 또 함께 먹으니까 평소보다 밥도 더 잘 먹게 됐고요. 그런 의미에서 즐거움이 잠깐 2순위로 올라왔어요.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저는 1인 가구고, 제일 자주 하는 식사가 혼자 먹는 식사인 거예요. 그러면 꾸준히 좋은 재료로 먹는 게 더 중요하겠다 싶어서 다시 원래대로- 몸과 건강 > 재료와 품질 > 감각과 경험을 1, 2, 3위로 선택했어요. 즐거운 식사도 중요하지만, 저한테는 결국 좋은 재료를 먹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수빈: 1인 가구라는 특성이 식사 기준에 미치는 영향을 윤 님을 통해서 알게 된 거 같아요.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라 흥미로워요!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좋은 식사의 우선순위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 밖의 다른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윤: 전에는 ‘이런 식재료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살아가는 건 저한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머리보다 마음에 더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예전에는 그래야지가 있었다면, 이제는 ‘나 정말로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로 바뀐 느낌이랄까요. 좀 더 진심이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오늘 수빈 님과 대화하면서 생각난 건데요, 제가 식생활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더 잘해봐야지 하면 그게 저한테 어려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더라도 방향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어찌 됐든 조금씩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다시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수빈 : 방금 해주신 말씀이 저한테 무척 필요한 말이에요. 예전에 제가 비거니즘을 실천하면서, 지향성은 큰데 현실은 장벽이 너무 많고 크니까 늘 제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한때는 그런 마음이 버거워서 비건 지향 생활을 포기하려고도 했었어요. 윤 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식생활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반윤욱 농부님과도 전에 대화하면서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을 하면 내 일상이 어떻게든 조금씩 변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저에게 큰 위안이 됐거든요.
수빈: 마지막으로, 윤 님에게 퇴근후마르쉐란 무엇인가요? 다소 쑥스러운 질문이지만 던져봅니다(웃음).
윤: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이미 존재하던 연결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낸다기보다,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는데 그걸 인지하게 해줬달까요. 그러면서 제 안에서 식사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초점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전에는 나 혼자서 살아간다는 감각이 강해서, 좋은 재료를 골라 건강하게 먹고 잘 돌보는 것에 마음을 썼다면, 지금은 내가 무엇을 먹느냐뿐 아니라 그 재료를 누가 어떻게 길렀는지, 누구와 먹는지도 소중해졌어요. 벗밭 친구분들을 통해, 농부님들의 농작물을 먹음으로써 그분들이 지향하는 방식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고요. 그런 의미에서 식사가 나 혼자 잘 먹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는 감각이 생겼어요. 식사만을 위한 모임을 하다 보니, 식사하며 느낄 수 있는 풍요를 알게 돼서 좋아요.
수빈 : 크… 저는 오늘 대화가 정말 좋은 게, 저에게도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이 된 거 같아요. 윤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추구하는 식사는 어떤 걸까,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저에게 식사는 항상 미션이고 사적인 영역이라서 폐쇄적인 태도로 대했거든요. 그러다 퇴근후마르쉐 식구들을 관찰하면서, 네 번의 만남과 그로 인한 변화들이 마치 입체적인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인물이 있고, 계속해서 변하는 인물이 있잖아요. 퇴근후마르쉐는 내가 누구와 함께 식사하고 어떤 농부님을 만나고, 어떤 음식을 해 먹는지에 따라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그래서 굉장히 입체적인 소설 같아요. 정해진 답이 없는 입체적인 소설 같은 식사! 저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사를 해나가고 싶어요.
윤 님과의 대화는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 타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와 동네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습니다. 먹는 일만큼이나 삶도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두 시간 동안 우리가 나눈 것은 단지 먹는 것에서 나아가, 살아가고 싶은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퇴근후마르쉐를 하면서 더 나은 식사를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됐다는 윤 님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집에서 마늘쫑을 넣고 밥을 했는데 죽처럼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이거다! 싶었고요. 어쩌면 우리에겐 굳은 다짐이나 방법론이 아닌, 지향성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랑하고 연약한 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랑한 말과 마음이 누군가의 꺾어질 위기에 처한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흙과 벌, 농부와 시장 등 이미 존재하던 연결을 떠올리고 그것들에 기대어 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벗밭과 마르쉐가 함께 만들어가는 퇴근후마르쉐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먹거리 안에서 이미 존재하던 연결을 알아차리는 경험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퇴근후마르쉐는 2주에 한 번, 도심에서 농부의 밭과 계절을 잇는 식탁을 차립니다. 다음 가을 편에서 우리는 또 만나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수빈 (벗밭 @butground)